"내 사회보장금 貧者위해 쓰시오"…로티교수 기금수령거부

  • 입력 2000년 3월 13일 19시 25분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실천적 철학자의 한 사람인 미 스탠퍼드대 리처드 로티교수(68)가 최근 하원의 사회보장 관련법 제정으로 자신이 매달 1600달러의 사회보장금을 받을수 있게 되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할 사회보장기금이 자신과 같이 여유있는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네오프래그머티스트, 인식론적 행동주의자, 탈근대 시민자유주의자, 자유주의적 아이러니스트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그의 이같은 행동은 빌 클린턴대통령의 ‘부익부 빈익빈’ 정책에 대한 의미있는 항거이며 양식있는 지식인의 목소리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그의 기고문을 요약해 싣는다.

▲"클린턴 부익부 빈익빈 정책" NYT 기고통해 비판

얼마전 사회보장청으로부터 멋진 편지를 받았다. 그 내용은 내가 한달에 약 1600달러를 받을 자격이 있지만 아직 많은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그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신문을 보니 하원은 어쨌든 내게 그 돈을 주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고 상원과 대통령도 이를 승인할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잘 살고 있고 일을 그만두면 충분한 연금을 받게 된다. 나는 지난 45년 동안 내가 납부해 온 사회보장세가 일반인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사용되기를 바란다. 월 사회보장금이 1000달러도 되지 않아 병든 몸을 이끌고 노동을 해야 하는 60대에게 그 돈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의원들은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일년에 5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만 신경을 쓰는 듯하다. 일단 경제호황의 붐이 그치고 실리콘밸리의 거품이 걷히면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그 짐을 다 떠맡게 될 것이다. 이들은 아이들의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 없고 이는 세습적 계급체계가 강화됨을 의미한다.

클린턴대통령은 훌륭하고 관대한 정신의 소유자임에도 바른 일을 하려는 그의 시도는 의회의 다수파인 공화당에 의해 좌절돼 왔다. 하지만 앨 고어 부통령과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을 지원해서 의회에서 그 법안을 철회시킨다면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해에 좀 더 보람있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정치적 타협에 능하다. 그러나 대통령직을 떠나기 전에 좀 단호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그는 조국의 도덕적 쇠퇴를 묵인한 것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http://www.nytimes.com/00/03/06/oped/06rort.html’ 참조-

▲로티교수는…

리처드 로티는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60∼70년대에는 분석철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으나 79년부터 분석철학과 결별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철학적 해석학을 수용했다.

그는 ‘미국내 좌파’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로티는 미국내 자생공산주의자와 프래그머티스트인 존 듀이 등을 구좌파, 포스트모더니스트 계열을 신좌파로 보고 신구좌파를 비판하며 신구좌파의 연합을 주장한다.

그의 주장 요지는 “정치적 실천을 먼저 하고 좌파적인 원리는 나중에 생각하자”라는 것이다. 그는 구좌파가 미국의 부정적인 면만 보는 것을 비판하고 ‘의회’처럼 미국의 긍정적인 점을 확장시킬 것을 주장한다. 신좌파에 대해서는 너무 관념적 현학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철학적 탐구와 실천적 행위를 각각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으로 구분한다. 이론적 탐구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교육기회의 평등, 부패정치와 뇌물 추방, 의료보험제도 실행 등 세 가지의 실천에 나설 것을 주장한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