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만 칼럼] 美호황과 '디지털'

  • 입력 2000년 2월 21일 19시 42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자문기관인 경제자문회의는 최근 발표한 경제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 호황의 주원인은 정부의 경제정책보다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있다고 강조했다.

옳은 지적이다. 70, 80년대 평균 2.5%에 불과하던 경제성장률이 최근 4%까지 늘어난 가장 큰 요인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노동생산성이 상승한데 따른 것이다. 미국이 인플레 없이 30년만에 가장 낮은 실업률을 누리고 있는 것도 생산성 향상 결과다.

미국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원인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마이크로칩의 등장이 호황을 가져온 것이다. 미국이 왜 하필 지금 호황을 누리느냐는 것이 수수께끼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70년에 처음 등장했고 팩시밀리, 비디오게임, PC가 선보인 것도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였다.

그러나 96년까지 미국 경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호황과 불황은 있었지만 전체적인 추세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과학기술의 발달이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미 스탠퍼드대 경제사학자인 폴 데이비드는 89년 논문 ‘컴퓨터와 발전기’에서 전구는 1879년에 발명됐지만 전기의 등장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증기기관을 전기모터로 바꾸는 것은 별 효과가 없었으나 이에 따라 공장의 구조가 바뀌자 비로소 본격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증기기관에 연결된 벨트를 통해 동력을 공급받던 시대에는 공장이 다층의 좁은 건물로 지어졌다. 그러나 전기모터가 동력을 공급하면서 공장은 단층의 넓은 건물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마찬가지로 PC를 책상마다 비치하는 것은 당장에는 큰 효과가 없었으나 회사 구조가 재편되자 성과를 거두게 됐다. 미국 경제는 점차 디지털 시대의 과실을 걷어들이게 됐다.

클린턴 집권시절 ‘미국 주식회사’가 이런 수확을 거둔 것은 단지 클린턴의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기여가 있었다면 경제를 망치는 정책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80년대 민주당의 고압적인 산업정책과 공화당의 금본위제 복귀정책이 실현됐다면 미국 경제는 탈선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도입되지 않았다.

경제 상황만 고려한다면 위대한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뽑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지 경제를 크게 망쳐놓지 않을 사람이면 족하다.

<정리〓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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