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Living]집안일 알아서 척척…'스마트 하우스'

  • 입력 2000년 1월 16일 20시 26분


《TV 프로듀서인 존 마커스와 화가인 그의 아내 아디스 트루한의 집 거실에는 조명을 조절하는 단추 14개, 스테레오와 CD플레이어를 조작하는 단추 22개, 창문 가리개를 조절하는 단추 4개가 달려 있다. 가정용 극장 시스템의 DVD, 위성서비스, 레이저디스크를 조작하는 조절판은 따로 있다. 그리고 전화 팩스 모뎀을 위한 전화선은 6개나 된다. 마커스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뉴욕에 있는 집안의 컴퓨터‘두뇌’에 전화를 걸어 집안에 있는 장치들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 마커스는 “아내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전화를 통해 집 침실의 창문 가리개를 갑자기 열어서 아내를 놀래주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면서 “하지만 내가 명령을 잘못 내리면 혹시 집안의 모든 장치가 완전히 작동을 중지해버릴까봐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의 소비자들이 무선통신, 가정용 컴퓨터, 인공지능 가정용품 등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새로 시작된 10년은 집안의 이런 모든 장치를 한데 통합시키겠다는 약속 혹은 위협을 소비자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경비 오락 조명 온도조절 등을 자동으로 처리해주는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을 갖춘 미국의 가정은 현재 약 750만 가구, 전체 가정의 7% 정도이다. 이런 자동시스템을 갖춘 가정이 1995년에 200만 가구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 동안 미국 사회가 엄청난 도약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전국 주택 건축가 협회에 따르면 가장 발전된 가정용 자동 시스템을 갖춘 집들은 전체 가구의 3∼4%를 차지한다. 이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전화와 모뎀을 이용해서 난방 냉방 경비 조명 오락 인터넷 전자우편 등을 마음대로 조절하거나 이용할 수 있다.

▼경비 온도조절 자동화▼

그러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들로 가득 찬 집의 소유자들은 어린아이 같은 흥분과 비참한 무력감 사이를 오간다. 심지어 기계를 아주 잘 다루는 사람들조차 지나치게 똑똑해져버린 집안에서 자기가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할 정도다. 고객들의 연락을 받고 고객의 집으로 가서 복잡한 디지털 장치들을 손봐주는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는 엘리어트 피시킨은 자신의 고객 중 한 사람이 집안에 자동장치를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을 팔아버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고객이 집을 판 것은 각종 자동장치의 조작법이 너무 복잡해서 기가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버리는 대신 피시킨 같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거는 편을 택한다. 피시킨의 회사인 이노버티브 오디오는 연중무휴로 하루 24시간 내내 고객들의 출장요청을 접수하며 시간당 75달러를 받는다. 피시킨은 추수감사절에 저녁식사를 하다가 고객의 전화를 받고 가서 스테레오 시스템을 고쳐준 적도 있다. 피시킨은 집안의 자동설비가 고장났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당황한 나머지 아무 단추나 마구 눌러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 대신 귀가 인사▼

그러나 기계에 압도당하는 사람들과 달리 새로운 설비가 나올 때마다 반드시 그 설비를 집에 장치해서 시험을 해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콜로라도 대학의 컴퓨터 공학 교수인 마이클 모저는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19세기의 교수 사택을 각종 장치와 컴퓨터, 비디오 카메라, 소리 및 동작 탐지기 등이 가득 들어찬 실험실 같은 곳으로 바꿔버렸다. 독신인 그가 집에 돌아오면 아내 대신 컴퓨터 스크린이 그를 맞이한다. “와! 오늘은 23분 일찍 돌아오셨네요”라고. 그리고 그가 밤중에 자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할 때면 소리 탐지기가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감지하고 화장실의 불을 켠다. 그러나 이 소리 탐지기는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밤에 모저가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기만 해도 화장실의 불을 켠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기계에 통제받는 느낌도▼

모저는 “내 집은 내 행동 패턴을 바탕으로 나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그러나 때로는 집안의 장치들이 나를 가지고 노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집안의 장치들은 또한 그의 행동을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일정하게 통제하는 역할도 한다. 모저는 “친구들과 늦게까지 밖에 있다가 갑자기 집에 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면서 “집안의 시스템이 내가 일정한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것을 원하고 있으며 나는 그 시스템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집안의 자동설비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그 모든 설비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용법이 너무 복잡해서 쉽게 익히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가정용 자동설비를 연구하고 있는 스티븐 셰퍼는 ‘아주 전통적인 집’에서 살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나는 약간의 지식만으로도 집을 아주 피곤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library/home/011300smart-houses.html)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