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美 무역로비 비밀노출…무협, 美법률-홍보사 비용분쟁

  • 입력 2000년 1월 14일 18시 50분


한국 무역협회의 대미(對美) 로비를 맡았던 워싱턴의 법률회사와 홍보회사가 로비 비용을 놓고 분쟁하다가 법정공방까지 벌이고 있는 것으로 13일 밝혀졌다. 그 과정에서 한국 무역협회의 대미 로비 전략과 실태가 노출돼 한국이 이중의 피해를 보고 있다.

홍보회사 APCO 어소시에이츠는 한국 무역협회의 로비스트로 13년간 활동해온 법률회사 애킨 검프 스트라우스 하우어 앤드 펠드를 사기와 계약위반 혐의로 7일 워싱턴 DC 상급법원에 제소했다. APCO는 애킨 검프사(社)에 대해 미수금 30만달러와 징벌적 위자료 100만달러 등 모두 130만달러(약 14억5000만원)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APCO의 소장에 따르면 애킨 검프사는 한국에 우호적이거나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 정치인 언론 등의 네트워크를 미국 전역에서 조직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 작성을 APCo에 발주했다. APCO는 1996년말부터 5개월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고 애킨 검프사의 요구로 7개월간의 추가작업을 통해 미국 언론의 한국관련 보도내용을 분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만들어 납품했으나 애킨 검프사로부터 30만달러 가량의 비용을 받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애킨 검프사의 한국인 시니어 파트너인 김석한 변호사는 “APCO의 데이터베이스는 쓸 수 없을 만큼 형편없었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데이터베이스 작성 소프트웨어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APCO측이 이를 거절했으므로 비용을 줄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변호사는 “이에 따라 애킨 검프사에서 데이터베이스를 독자적으로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며 “APCO측에 이미 지불한 30만7000달러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었는데도 그냥 덮어두려 했더니 APCO측이 너무 심하게 나오는 것같다”고 덧붙였다. 애킨 검프사는 이 비용의 반환을 요구하는 맞제소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이상직 전 무역협회 워싱턴 소장은 “APCO측이 제공한 데이터베이스가 무용지물이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도 “데이터베이스의 90%가 현대자동차의 미국인 딜러 명단을 모아놓은 데 불과해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APCO측은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리처드 앨런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한국에 파견, 무역협회의 한 관계자로부터 데이터베이스의 품질에 만족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아와 법원에 제출했다. 김변호사는 “무역협회를 소송에서 제외시켜 주겠다고 회유해 서한을 받아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의 법률전문신문 리걸 타임스 11일자는 외국을 위한 비밀로비의 실체가 이번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드문 일이라며 이번 사건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리걸 타임스는 당시 한국이 지적재산권 불공정 무역국 명단에서 빠지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이해집단들을 동원해 미 무역대표부(USTR)에 로비해 결국 명단에서 제외됐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