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산 교육 4]대학별로 학문 전문화

  • 입력 1999년 10월 24일 19시 26분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한국인 유학생 이모씨(28)는 올해 파리 교외 크레테이에 있는 파리13대학에서 경제학 박사준비과정(DEA)을 시작했다. 이씨는 석사과정 지도교수의 권유에 따라 대학을 옮겼다.

파리1대학의 경제학과는 리버럴리즘에 입각한 현대 경제학 주류를 가르친다. 이씨가 계획한 박사논문 주제는 세계체제론의 관점에서 본 아시아신흥국가의 경제위기. 이씨는 지도교수가 제삼세계론이나 종속이론은 파리13대학이 강하다며 추천장을 써줘 큰 어려움없이 학교를 옮겼다.

프랑스에서는 학문적 경험 축적을 위해, 또는 연구주제에 따라 대학을 옮기는 것이 일반화돼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더 나은 연구환경과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따라 활발하게 자리를 옮긴다. 어느 대학 교수라는 타이틀보다는 특정분야의 권위자로 평가받는데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지도교수를 따라 대학을 옮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강의내용-학풍 달라▼

프랑스 대학이 일류대 이류대 삼류대로 구분되지 않는 것도 이같은 활발한 학문교류의 바탕이다.

68년 5월 학생혁명 이후 프랑스 교육당국은 대학평준화를 위해 전체고등교육기관을 통폐합, 단과대학을 폐지하는 대신 관련학과를 계열별로 여러개 모은 대학제도(Universite)를 도입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대학은 한국의 종합대학과는 거리가 멀다. 한 대학이 백화점식으로 모든 학과와 단과대학을 망라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

68년 이후 13개로 나뉘어진 파리대학의 경우 △1, 2대학은 법정 △3, 4대학은 인문과학 △5, 6대학은 의학 자연과학 △7대학은 사회과학 기술 △8대학은 사회과학 영화예술 △9대학은 경제 경영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학 프랑스문학 등 몇몇 학과는 중복되기도 하지만 대학의 역사적 배경과 교수진에 따라 강의내용이나 학풍이 사뭇 다르다. 사학과를 예로 들면 파리1대학은 사회문화사, 4대학은 실증주의역사, 7대학은 사회심리문화사, 8대학은 노동경제사, 10대학은 20세기 이후 현대사, 11∼13대학은 도시발달사 등을 가르친다.

▼중앙-지방 차별없어▼

대학이 이렇게 전문화되다보니 학생들도 프랑스문학중에서 라블레를 공부하려면 투르대학, 유럽통합을 연구하려면 스트라스부르대, 마르크시즘계열의 사회과학이나 현대문학의 신비평쪽을 공부하려면 파리8대학으로 발길을 옮긴다. 문화인류학관련 DEA의 경우 △문화인류학 일반과 적용(니스대)△선사시대의 문화인류학과 민족학(파리1대학)△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리옹3대학)△사회적 문화적 역동성의 문화인류학(몽펠리에3대학) 등으로 최고의 대학이 구별된다.

정성배 파리고등사회과학원 명예교수는 “성적에 따라 대학과학과를 결정하는 한국과는 달리프랑스에서는 원하는 전공을기준으로대학과 학과를 결정한다”며 “이는 그랑제콜을 제외한 모든 대학이 국립으로 평준화돼있는데다 전문화됐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사는 물론 박사준비과정, 석사 등 모든 학위가 전공별로 전문화된 대신 대학간 격차, 대도시와 지방대학의 차별도 거의 없다.

지방 대도시에도 여러 개의 대학이 있지만 학과가 중복 개설된 경우는 없다.

대학별로 특화된 프랑스 대학의 실용주의는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덩치를 키운 뒤 학맥을 재생산하려는 한국의 대학과는 분명히 다르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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