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양민학살]누가 발포명령 내렸나?

  • 입력 1999년 10월 3일 19시 58분


지금은 노인이 된 6·25전쟁 참전 미군들은 근 반세기만에 ‘노근리 학살사건’에 대해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 육군 조사관들에게 ‘한국판 킬링 필드’ 노근리는 여전히 의문 투성이다.

노근리 학살사건 당시 제7연대 병력은 퇴각중이었으며 피란민들 속에 북한군이 숨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일부 제7연대 출신 미군들은 중대장이었던 멜번 챈들러 대위가 현장에서 “모두 없애버려”라고 명령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챈들러 대위가 무전을 통해 연대본부와 사전협의를 했을 것으로 믿고 있으며 한 참전용사는 대대 수준의 장교가 발포 명령을 하달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더 윗선의 지휘계통, 예를 들어 “제7연대와 제1기갑사단 지휘부는 과연 노근리 사건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챈들러 대위는 70년 숨졌고 다른 대대 장교들은 전사했다. 당시 챈들러 대위 중대의 상급 대대를 지휘했던 허버트 헤이어 대령은 88세의 고령인데다 병을 앓고 있으며 “학살사건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발포 명령을 내린 지휘관은 지휘계통을 따라 하달된 ‘포괄적 사살명령’으로 피란민들에 대한 사살권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제1기갑사단 복무규정에는 피란민을 포함, 방어선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그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발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다른 이웃 사단에서는 한 장군이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군사법률가들은 이같은 명령들이 명백히 불법적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한국 전선을 책임지고 있었던 미 8군 사령관 월튼 H 워커 중장이, 나아가서 일본에 체류하면서 한국전쟁을 총괄했던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이 그같은 불법적인 명령을 재가했는지 여부도 쟁점으로 대두된다.

노근리에 몰려든 피란민 대열속에서 누군가가 7연대 병력을 향해 총기를 발사했는가 하는 점도 의문이다. 몇몇 참전 미군들은 노근리 철교 아래로부터 산발적인 총격이 있었다거나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으나 다른 장병들은 적대적인 총격이 있었다는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일부 적군이 피란민 속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수백명의 민간인 학살로 이어진 사실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뉴욕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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