比 독재피해자 배상받는다…마르코스 유족-피해자 합의

  • 입력 1999년 2월 26일 20시 25분


전 필리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89년 사망)의 독재정권 치하에서 처형 또는 실종되거나 고문을 당한 피해자 9천5백여명이 마르코스 유가족들로부터 모두 1억5천만달러의 손해배상금을 받게 됐다.

25일자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에 따르면 하와이 호놀룰루 지방법원은 24일 피해자와 유가족 사이의 이같은 합의안을 승인해 13년간에 걸친 집단 손해배상소송을 사실상 끝냈다.

이 합의안은 4월14일 심리에서 최종 승인될 예정인데 독재자의 인권유린을 둘러싸고 제기된 전세계의 소송 가운데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소송은 86년 마르코스정권을 타도한 ‘피플파워’혁명 직후에 9천5백여명의 필리핀 피해자들이 마르코스와 그 가족을 상대로 제기했다. 그후 95년에는 마르코스 유가족측이 19억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배심원의 평결이 나왔으나 실제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당시 원고측 변호인들은 이를 집행하기 위해 스위스의 두 은행에 유령재단 명의로 은닉된 마르코스의 예금 4억7천5백만달러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다만 원고측 변호인들은 마르코스가 생전에 소유했던 하와이 저택과 자동차를 팔아 1백만달러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번 합의에 대해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원고측의 원래 요구에는 크게 못미치지만 배상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환영했다. 피고측 변호인들도 “평결액수 19억달러 중에서 1억5천만달러만 지급하게 된 것은 성공적 방어”라며 만족했다.

합의안이 최종승인되면 피해자들은 1인당 평균 1만6천달러의 배상을 받게 된다. 즉결처형 사망자 유가족은 12만8천5백15달러, 실종자 가족은 10만7천5백83달러, 고문 피해자는 5만1천7백19달러를 기준액으로 하되 피해가 경미하면 적은 액수를 받는다. 마르코스 유가족으로는 부인 이멜다와 아들 등이 있다.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마르코스 일가의 자산은 그동안 5억9천만달러로 늘어나 이번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도 4억4천만달러가 남는다. 이 자산의 배분을 둘러싸고 마르코스 일가와 필리핀 정부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종환기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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