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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월 20일 19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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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의 연설은 그가 여전히 자신있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었다. 77분간 계속된 연설은 박수갈채로 85번이나 중단됐다. 박수갈채시간은 모두 23분37초로 집계돼 지난해(20분27초)나 97년(13분26초) 연두교서 발표때보다 오히려 길었다.이날 낮에도 그에 대한 상원의 탄핵재판이 계속돼 어쩌면 현직에서 물러날지도 모르는 대통령으로부터 국정연설을 듣는 기묘하고 어색한 상황. 그러나 백악관측은 이날 하루 일정을 클린턴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나갔다.
클린턴대통령은 탄핵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없이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정책에만 치중함으로써 직무에 충실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그는 연설 말미에 하던 특별손님들에 대한 소개를 연설 중간중간에 배치함으로써 연설을 박수갈채로 뒤덮이게 하는 기막힌 작전을 펼쳤다. 이날 소개된 인사들은 흑인민권운동의 선구자 로자 팍스, 도미니카공화국출신의 프로야구선수 새미 소사, 이라크 공습작전에 참가했던 조종사, 의사당 총기난사사건으로 숨진 경찰관의 미망인 등 10명. 박수에 인색했던 공화당의원들도 기립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클린턴대통령은 자신이 남녀 임금격차 시정을 약속한 대목에서 공화당의원들까지 기립박수를 보내자 “매우 고무적”이라면서 “이제 시소가 균형을 이뤘다”고 조크를 섞는 여유까지 보였다. 많은 공화당의원들이 처음부터 불참했고 연설도중 추가로 상당수가 자리를 비웠으나 대세를 막기는 어려웠다.
클린턴은 올 회계연도에만 7백60억달러를 비롯해 향후 15년간 4조4천억달러나 쌓일 흑자예산을 어디에 투입하느냐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부각시켰다. 46년생으로 전후 베이비 붐세대인 그는 베이비 붐세대가 ‘시니어(Senior·노인) 붐세대’로 바뀌면서 노후연금을 고갈시킬 것에 대비, 흑자예산의 62%를 노후연금 확충에 쏟아붓겠다고 약속했다. 장단기 의료보호혜택과 새로운 저축연금 등에 추가 투입할 예산까지 합치면 사회보장관련 예산에 흑자예산의 89%를 투자하겠다는 것. 이는 흑자예산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10%의 세금감면을 약속한 공화당의 계획과 배치된다. 클린턴은 노후연금에 투입될 흑자예산의 25%와 별도로 설립될 저축기금까지 주식시장에 투자하겠다고 밝혀 뉴욕 월가를 고무시켰다.
그가 국외문제를 언급한 것은 연설이 시작된지 50분이 경과한 뒤.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경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과 노동의 인권이 동시에 보장돼 보통사람들에게 무역 자유화의 혜택이 돌아가는 새로운 협상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발표될 예정이지만 세계무역기구(WTO)의 틀안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우루과이라운드와 같은 본격적인 무역협상이 될지는 미지수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