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보고서 내용]부적절한 관계-폰섹스서 惡緣으로 매듭

입력 1998-09-13 19:50수정 2009-09-25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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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스타검사가 의회에 제출, 11일 공개된 보고서에는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 전백악관 인턴과의 만남에서 연방대배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부적절한 관계’, 두사람과의 관계가 알려진후 클린턴의 은폐 노력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또 ‘대통령의 연인’이었던 르윈스키가 클린턴과의 관계를 부인하며 ‘연인’을 보호하려다 심경의 변화를 갖게 된 배경 등도 담겨 있다.

◇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만남 ◇

두사람의 만남은 르윈스키가 95년 7월 백악관 인턴으로 들어와 백악관 비서실장 리언 파네타의 전화를 받는 업무를 시작하면서부터.

처음에는 르윈스키가 클린턴에게 자주 시선을 보냈으며 악수를 청하고 자신을 적극 소개했다. 클린턴도 곧 그녀를 인식하고 매력을 느끼는 듯했다.

특히 그해 11월14일 연방 예산을 둘러싼 행정부 파업으로 백악관이 일주일간 휴무에 들어갔을 때 두사람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부쩍 많아졌다.

11월15일. 이날밤 클린턴은 르윈스키를 서재로 불렀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키스했다. 르윈스키는 클린턴에게 백악관 인턴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후 어느 순간부터인가 짝사랑 해왔노라고 고백했다.

◇ 부적절한 관계 ◇

클린턴과 르윈스키간의 인연과 파문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11월15일〓르윈스키는 대통령 집무실 밖 복도에서 대통령과 오럴 섹스를 했다. 대통령은 르윈스키의 맨가슴을 직접 만지고 키스했다.

대통령은 르위스키의 팬티 속에 손을 넣어 그녀의 치부를 직접 자극했다. 이날 오럴 섹스 도중 전화가 걸려오자 두사람은 복도에서 집무실로 옮겨갔다고 르윈스키는 증언했다.

“클린턴대통령이 전화기를 통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오럴섹스는 계속됐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인 것 같았다.” 백악관 기록에 따르면 이날밤 전화를 건 사람은 짐 챕먼과 존 태너 등 하원의원 두 명이었다.

▼11월17일〓그녀는 오벌 오피스 밖의 개인 욕실에서 대통령과 오럴 섹스를 했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의 맨 가슴을 손으로 애무하고 가슴에 키스를 했다. 이날도 성관계 도중 의원의 전화가 걸려왔다.

▼12월31일〓클린턴은 르윈스키의 스웨터를 벗기고 손으로 가슴을 애무했으며 가슴에 키스를 했다. 그녀는 대통령과 오럴섹스를 했다고 말했다.

▼96년 1월7일〓르윈스키는 대통령과 오럴섹스를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그녀의 맨가슴을 손과 입으로 애무했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에게 오럴섹스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생리중이라며 거절했다.

▼1월21일〓클린턴은 복도에서 르윈스키의 상의를 벗기고 그녀의 맨가슴을 애무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팬티를 내리고 성기를 노출시키자 그녀는 오럴섹스를 해줬다. 이 때 집무실로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대통령은 황급히 지퍼를 올리고 집무실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2월4일〓클린턴은 르윈스키를 불렀다. 그는 르윈스키의 드레스와 브래지어를 부분적으로 들어 올리고 손과 입을 그녀의 가슴에 댔다. 그는 또 그녀의 성기를 직접 만졌으며 르윈스키는 대통령에게 오럴섹스를 해주었다.

▼3월31일〓대통령이 르윈스키에게 전화해 서류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녀는 서류 속에 대통령을 위해 준비한 선물인 넥타이를 함께 넣어갔다. 그녀의 하의를 벗기고 성기를 직접 애무했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의 질 속에 시가를 집어넣었다가 빼 입에 물고는 “맛이 좋군”하고 말하기도 했다.

▼4월7일〓클린턴은 르윈스키를 백악관으로 불렀다. 이때 르윈스키는 클린턴에게 국방부로 전근 통보를 받은 사실을 알렸다. 클린턴은 당혹스러워 하며 “11월 선거(대선)에서 이기면 다시 부르겠다”고 말했다. 대화 후 대통령은 르윈스키의 가슴을 만졌으며 르윈스키 역시 대통령에게 오럴 섹스를 해주었다.

르윈스키는 백악관에서 근무할 때 8차례, 그후 2차례 등 클린턴과 10차례 성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했다. 반면 클린턴은 8월17일 연방대배심 증언에서 ‘부적절한 관계’는 르윈스키가 인턴을 끝낸 96년 초에 일어났고 97년초에 한번 더 있었다고 진술했다.

◇ 백악관의 르윈스키떼어놓기와 폰섹스 ◇

르윈스키가 너무 자주 대통령 집무실에 드나들자 비서실의 한 공무원이 에블린 리버만 비서실부실장에게 불평을 했고 리버만은 르윈스키를 내보내기로 했다.

96년 4월5일 티모시 키팅이 르윈스키를 불러 “백악관을 떠나야 겠다. 해고는 아니며 단지 직무가 달라지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르윈스키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급여가 없어도 좋으니 백악관에 머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했다.

르윈스키는 4월16일부터 국방부에서 일했고 이해 12월까지 두사람의 직접적인 성접촉은 8개월 가량 중단됐다. 대신 전화를 통한 폰섹스가 시작됐다. 르윈스키는 대통령과 대략 15번의 폰섹스를 나눴다고 증언했다.

대통령이 르윈스키에게 매번 전화를 걸어 폰섹스를 주도했다.

대통령은 집무실이나 미국내 출장지인 덴버 라스베이거스 등은 물론 프라하와 부다페스트 등 외국 출장중에도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가 오면 르윈스키는 “국방부 일은 싫다. 백악관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으나 대통령은 “오늘은 당신의 직장 문제 말고 다른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일이란 폰섹스를 뜻하는 것.

한번은 폰섹스 도중 르윈스키가 “삽입 성교를 하고 싶다”고 하자 대통령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 그건 안된다”고 말했다.

◇ 접촉 재개 ◇

97년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한 후 르윈스키와 진전된 관계를 계속했고 이때부터는 대통령 비서인 베티 커리가 이를 조정했다.

커리에 따르면 르윈스키는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 대통령면담을 요구했다. 커리는 르윈스키가 대통령과 여러차례 집무실이나 서재에서 15∼20분간 있었다고 증언했다. 르윈스키는 97년 10월7일부터 12월8일까지 7차례나 백악관에 선물을 보냈다. 커리는 두사람의 관계가 잘못돼 있다는 의심을 가졌다고 증언했다.

커리는 그러나 이들의 관계를 비밀에 부쳤다. 르윈스키에게 전화할 때는 교환을 통하지 않고 직접 다이얼을 돌렸고 그녀와의 전화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97년 2월28일〓짙푸른 드래스를 입고 르윈스키는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라디오 연설회에 참석했다. 연설회 후 두 사람은 서재로 갔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려하자 르윈스키는 키스해 달라고 요구했다. 클린턴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크리스마스 선물을 내놓았다. 모자핀과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이었다. 르윈스키는 이때 복도 뒤 욕실에서 성적 접촉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오럴섹스 도중 클린턴이 도중에 밀어냈으나 르윈스키는 이번에는 끝까지 하고 싶다고 간청하기도 했다. 르윈스키는 이날 처음으로 오럴섹스를 ‘끝까지’ 할 수 있었으며 나중에 르윈스키는 이날 입었던 드레스의 엉덩이와 가슴 근처에 얼룩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는 대통령의 정액일수도, 음식물 자국일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날 입었던 드레스는 스타검사측에 증거로 제출됐으며 이때 묻은 정액이 미 연방수사국(FBI)의 DNA(유전자)검사결과 클린턴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져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를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됐다. 클린턴은 연방대배심 증언에서 “그날 이후로 나는 고통스러웠다.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그만둔 지 1년이 지났기 때문에 다시 만난 당시에는 즐거웠다”고 말했다.

▼3월 29일〓커리가 르윈스키에게 전화해 백악관으로 왔다. 대통령은 르윈스키를 만나자마자 격렬히 키스했으며 옷을 벗겼다. 르윈스키가 성기 접촉을 원했으며 둘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삽입은 없었다. 이날도 오럴섹스를 통해 사정에 이르렀다.

▼5월24일〓커리가 전화를 걸어 오후1시까지 백악관에 와달라고 했다. 르윈스키는 밀짚모자에 선물로받은 모자핀을 꽂고 선물을 준비했다. 대통령은 이제 친밀한 관계를 끝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혼초 수백가지 (외도)사건을 겪었으나 40대 이후 충실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르윈스키가 흐느끼며 관계를 끊지 말자고 호소했으나 그는 양보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커리와 마샤 스캇에게 백악관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커리는 반대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녀가 돌아오도록 조용히 설득하라고 지시했다.

▼8월16일〓르윈스키와 백악관 대통령집무실에서 만났다. 키스를 나눴으며 르윈스키가 옷위로 대통령의 치부를 만졌다. 르윈스키가 오럴섹스를 하려 했지만 클린턴이 거절했다. 이 만남에서 다른 성행위는 없었다.

이후 르윈스키의 일자리 구하기가 진척이 없자 클린턴은 ‘르윈스키가 두사람의 관계를 폭로할지 모른다’는 염려를 하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앞서 7월4일에도 르윈스키를 만나 “미 합중국 대통령을 협박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꾸짖으며 한편으로는 달랬다고 말해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 섹스스캔들 폭로◇

워싱턴포스트가 1월21일 르윈스키가 친구인 린다 트립과의 대화에서 클린턴과의 성관계를 말했으며 비밀 녹음테이프가 스타검사에게 제출됐다고 폭로함으로써 ‘클린턴과 르윈스키 섹스스캔들’이 알려졌다. 스타검사도 린다 트립이 제출한 테이프를 1월 10일 입수, 특별검사의 조사 대상을 ‘르윈스키와의 성관계’까지 확대했다.

이후 클린턴은 언론과의 인터뷰, 각의에서의 주장, 개인변호사를 통한 대응 등을 통해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인했다.

그러나 르윈스키는 8월6일과 26일 두차례의 연방대배심 증언을 통해 클린턴과의 성관계, 폰섹스 등을 밝혔으며 정액이 묻은 드레스를 증거로 제출했다.

또 “클린턴이 우리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부정하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르윈스키는 또 “클린턴은 백악관에서 성관계를 가질 때는 집무실 문을 약간 열어 누가 오는지를 알수 있도록 했다. 성관계를 할 때 신음소리를 내지 못하게 손을 입게 넣기도 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두사람이 성관계를 할 때는 항상 완전히 옷을 벗지 않아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고 밝혔다.

◇ 르윈스키의 심경 변화 ◇

르윈스키는 차츰 클린턴과 사랑에 빠지게 됐다고 진술했다. 자신은 클린턴을 ‘미남(Handsome)’이라고 불렀으며 클린턴은 자신을 ‘스위티’ ‘베이비’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클린턴은 96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자신과 거리를 두기 시작해 서운한 감정이 생겨났다. 특히 자신과의 관계가 드러난 후 자신은 위증을 무릅쓰고 관계를 부인하고 있는데도 자신에 대한 배려나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돌봐주지 않아 스타검사의 ‘면책조건 증언’에 응했다고 밝혔다.

〈허승호·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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