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 꺼리는 한국의 세 후보』…美 NYT

  • 입력 1997년 12월 13일 20시 42분


한국이 동아시아 대부분을 위협하는 경제위기로 비틀거리고 있으나 3명의 대통령선거 후보중 아무도 한국경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신뢰할 만한 설명을 내놓고 있지 않다. 심지어 2명의 후보는 이제 한국경제의 생명유지시스템이 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지원합의를 재협상하겠다고 밝혔다. 각 후보가 IMF협상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한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 투자가들과 외국정부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한국에 닥친 더 큰 문제는 세 후보중 누구도 빚덩이에 올라 앉은 은행과 공장을 폐쇄하고 노조의 파업에 맞서 싸우며 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프로그램 뒤에서 국민을 통합시켜야 한다는 광범위한 여론층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김대중(金大中)후보와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모두 지성과 국제적 감각과 용기를 두루 갖춘 것으로 존중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IMF협약을 이행하고 대량해고 물가상승 기업파산이 몰아닥칠 황량한 풍경을 눈앞에 두고 국가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 엄청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홍구(李洪九) 전총리는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다』면서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그는 매우 인기없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방법은 없다. 우리는 누군가 「이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해내야 할 일이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 후보간의 정책적 차별성은 매우 작다. 세 사람은 모두 친미(親美)외교 채택과 시장경제 옹호, 북한과의 통일 추진 등에 합의하고 있다. 가장 뚜렷한 정책의 차이중 하나는 IMF와의 재협상을 추진하느냐는 문제다. 김대중후보는 며칠전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우리 경제의 자율성과 국가경제의 이익을 되찾기 위해 IMF와 재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회창후보는 IMF협상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인제후보도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후보는 지난 며칠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김후보는 최근 공개한 미셸 캉드쉬 IMF총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추가적 문제를 해결하고 협상안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후보는 이 편지에서 또 『내가 협상내용 전체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한다는 몇몇 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나는 그러한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후보의 자문을 맡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벤 Q 림은 『그가 말하는 재협상은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것과 다르다』면서 김후보는 단순히 가이드라인 틀안에서 조정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후보들이 그들의 경제정책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그들이 겪게 될 고통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후보들은 단지 일반적 용어로 그들이 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경제를 현대화하는데 주력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하지만 후보들은 그 임무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깨닫고 있을 것이다. 이회창후보는 많은 분석가들이 한국의 중심적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는 정치가 관료 및 대기업과 뒤엉켜 있는 권력체계의 산물이다. 김대중후보는 이같은 체제의 국외자였다는 점에서 현 권력체제를 뒤집는 것이 더 용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는 노조에 『노』라고 말하는 데 어려움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서구의 한 고위급 외교관은 『한국은 지금 IMF협상을 충실히 이행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정치적 환경에 놓여있는 것이 분명하다』면서 『협상 이행은 한국의 시스템을 정상작동시키는 연결조직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권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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