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 바이 디, 라오스(안녕하세요 라오스)?』
「백만 코끼리의 땅」 혹은 「백색 파라솔의 왕국」으로 알려진 라오스. 최근 우리나라와 국교가 수립된 나라.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장기간의 프랑스식민지배로 여전히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더 잘 통한다. 수도는 비엔티안(Vientiane·현지발음은 비앙짠).
68개 민족이 공존하는 라오스에서는 소수민족이 전체인구(4백30여만명)의 반을 차지한다. 종족은 거주지의 고도에 따라 크게 4개 범주로 나누어진다. 메콩강 퇴적평야와 그 지류유역에 거주하는 지배민족 라오족을 가리키는 라오 룸(LaoLum, LowLao·평지 라오라는 뜻)과 타이 담(검은 타이족)을 위시한 타이제족인 라오타이, 커무와 라멧 등의 중부산악족 라오 퉁, 해발 1천m이상의 산악지대에 사는 고산족 라오 쑹이 바로 그들이다. 선심쓰듯 공통적으로 라오라는 이름은 붙여주되, 어느곳에서나 그렇듯 제일 살기 좋은 지역은 지배세력이 차지하고 있다. 물론 소수민족들은 라오족에 멸시당하면서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채 가난한 일상을 살아간다.
고산족의 대표격은 미엔족과 몽족. 몽족의 숫자는 대략 20만명. 이우 미엔, 야오, 만 등으로 불리는 미엔족은 3만∼5만명 정도다.
몽족의 별칭은 미야오 혹은 메오인데 정작 몽족 자신들은 그렇게 불리는 것을 모욕으로 여긴다. 중국고대민족 묘족(苗族)에서 갈라져 나온 라오스의 미야오, 아니 몽족은 주로 화전으로 쌀과 옥수수를 재배해 생계를 꾸린다. 소 돼지 닭 등의 가축도 기른다. 남자들은 쇠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철제품을 만들어 타종족과 물물교환을 한다. 특히 장도 화승총을 잘 만든다. 아편재배로 현금소득을 올리는데도 어느 종족에게 뒤지지 않는다.
주거지는 후아 판, 시엥 쾅, 루앙 파방일대. 타종족에 비해 호전적이고 싸움에 능해 60∼70년대초에는 미국 CIA의 훈련을 받고 방 파오 휘하의 특수부대에 소속되어 반공전선에서 맹활약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반공레지스탕스 세력은 대부분 몽족이다. 남자들은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소매없는 짧은 상의와 바지를 입는 반면 여자들은 우리네 두루마기를 연상케 하는 검은 색 장옷을 입는다. 장옷은 목덜미 아래 등쪽에 사각의 수직 장식천을 대고 목깃에는 푸른천을 박아넣었다. 머리에는 두건 비슷한 모자를 쓰거나 천을 휘감아 두른다. 발은 남녀공히 맨발.
딸랏 52시장에서 카오뿐이라는 이름의 전통 밀국수를 한그릇 먹고 거기서 만난 몽족 남자를 따라 몽족 마을을 찾아갔다. 마을에 도착해 사진기를 들이대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질겁을 하고 도망을 간다. 별수없이 어느집을 방문해 점잖게 흥정을 하고 필요한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몽족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일부다처제의 혼인 풍습.그렇다고 몽족남자들이 모두 호색한이라거나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오산. 돈이 없어 아내를 거느리지 못하는 노총각 홀아비들도 적지 않다. 여러 아내를 거느린 남편은 아내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내가 들른 집의 가장은 젊어 보이는데도 부인이 3명이나 되었다. 미남이라고 칭찬을 하니 부인들쪽에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펄쩍 뛴다. 남편이 그말 듣고 또 장가를 들까 하는 걱정에서다. 몽족의 가옥구조는 땅에 나무기둥을 박아 세워 지은 고상식 주택.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2층(사실은 1층)에는 거실과 부인들 숫자만큼의 1평 남짓 크기의 방들이 있었다. 부인들이 잠자리를 놓고 다투지 않느냐고 묻자 시어머니 왈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말한다. 밤에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자면 그날은 『다른데 가보세요』라는 뜻이라던가. 이렇듯 현명하게 나름대로의 묵계가 이뤄진다. 몽족 사람들은 사는 것은 궁핍해도 예로부터 춤과 음악을 사랑하며 자신들의 전통을 굳게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여자들은 성품이 순박하고 눈이 유난히 맑다. 얼굴표정은 문명인보다 담담하고 그윽하다.
연호택<관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