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人남성,사랑위해 북송선탔다 간첩오인 26년 복역

  • 입력 1997년 9월 9일 20시 09분


「사랑」을 위해, 또는 「지상낙원」의 선전에 속아 배우자의 고국 북한으로 간 일본인은 여성뿐만이 아니다. 명문대를 졸업한 일본의 엘리트 남자가 재일교포 여성과 결혼, 북송선을 탄 끝에 결국 북한 강제수용소에 갇히게 됐다. 일본 아사히신문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에라」 최근호는 이 남자의 비극을 소개했다. 지방명문 도호쿠(東北)대학을 졸업, 노동성 사무관으로 일하던 시바타 고조(芝田孝三)가 북송선을 탄 것은 30세때인 60년1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3년 연상의 재일교포 여성과 결혼한 지 불과 한달 뒤였다. 시바타는 부인 및 부인이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자식의 장래를 위해 북한행을 선택했다. 만경봉호를 타기 직전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연구해온 경제학을 살리고 싶지만 생활을 위해 육체노동도 각오하고 있다』고 부푼 꿈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후 모친사망(64년5월)소식에도 불구, 그는 일본을 방문하지 못했다. 그해 10월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것이 마지막 편지였다. 연락이 끊기면서 불안감을 갖고 있던 가족들에게 92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중국의 조선족 남자가 북한에서 간첩혐의로 몰려 평양부근 「승호리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을 때 시바타와 같은 방에 있었다는 것. 앰네스티를 통해 확인을 요청한 가족들에게 돌아온 답변은 「군사기밀을 외국 정보기관에 전달했고 수감중에도 반국가음모를 선동, 26년간 복역했으며 석방된 직후인 90년 열차사고로 숨졌다」는 북한당국의 싸늘한 통보였다. 그러나 가족들은 시바타가 간첩행위를 했다는 북한측 주장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출신인 그에게 「일본인처」들이 여러가지를 상담했고 이 과정에서 스파이로 몰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가족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정말 사망했는지, 사망했다면 원인은 무엇인지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도쿄〓권순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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