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골 작은 도시의 영화축제가 대도시 영화마니아까지 사로잡았다. 5일 폐막한 제1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는 「스크린 세대」의 에너지와 열기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고, 문화상품으로서의 영화제 가치를 일깨워주었으며 수동적인 영화관객을 적극적인 대중문화 소비자로 끌어올린 「인터랙티브 문화」의 산실이기도 했다.
지난달 29일부터 8일동안 열린 이 영화제에서 작품을 관람한 인원은 유무료 합해서 9만명. 당초 목표인 10만명에 육박하는 수치다.
수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열기.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연출한 무려 4시간반짜리 영화 「킹덤」이 대표적인 경우. 지난달 30일 자정에 열린 첫 상영에는 4백여석 극장에 2천여명이 몰려 급히 다른 극장을 잡아 시차를 두고 두 곳에서 상영했으며 그러고도 수백명이 발길을 돌려야했다.
부천 초이스 부문에 「패시지」를 출품한 주라즈 헤르츠감독(62)이 『내가 가본 영화제중 최고다. 평생 여러 영화제를 다녀봤지만 이처럼 객석이 꽉찬 영화제는 처음 봤다. 특히 관객들의 수준이 높고 진지해 놀랐다』고 말했을 정도.
어릴 때부터 영상을 먹고 자란, 서울 부산에서까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스크린 세대」들이 일본 애니메이션과 판타스틱 스릴러 등 최신 작품에서 갈증을 채운 반면 무료로 상영된 「한국영화 회고전」과 「한국 애니메이션의 재발견」시리즈는 가족 단위 시민들로 연일 장사진을 이뤘다. 마니아를 위해서나 지역의 시민들을 위해서나 만족스런 프로그램이었던 셈.
박광수감독은 『작품의 품질이 전반적으로 훌륭했다. 다만 판타스틱 영화제라는 특색이 명확하지 않았고 한국 작품은 2개밖에 상영되지 않아 한국 영화계와 연관성이 없었던 것이 아쉽다. 마니아들에게는 산타클로스의 선물과도 같은 영화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폭발적 열기는 역시 폭발적인 「스크린 세대」를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영화제라는 것이 훌륭한 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쟁 부문인 부천초이스를 더욱 짜임새있게 발전시킨다면 세계의 유명영화제 못지않은 영화축제를 열 수 있는 영화선진국으로서의 발돋움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구나 이번 영화제는 소수 전문가나 업계 관계자들을 위한 「그들만의 잔치」로 그치지 않았다. 컴컴한 극장에서 말없이 구경하는데 그쳤던 영화관객들을 감독과 만나고, 느낌을 나누며 영화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적극적 문화소비자로 한차원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돈과 얽힌 깔끔하지 못한 예산 운영은 아쉽다. 조직위는 15억원의 예산중 시도에서 지원한 5억원을 제외한 10억원의 협찬지원금을 「거인」이라는 개인 이벤트회사가 끌어오도록 맡기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을 했다. 이 회사는 10억원을 끌어모으기 위해 영화제와 관계없는 장터와 놀이동산 등 상업적 행사를 잔뜩 벌여 영화제의 취지를 흐려놓았고 그러고도 모자라 부도를 냄으로써 하청업체들에 피해를 주었다.
집행위원장인 이장호감독은 『영화제를 시민축제로 만들기 위해 이벤트를 기획했는데 개인 업체를 끌어들인 것이 잘못됐다』고 시인하고 내년부터는 시민단체에서 이벤트를 주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연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