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대사일행 망명과정]兄과 동반결심후 美측에 타진

  • 입력 1997년 8월 26일 19시 49분


장승길 이집트대사 부부와 장승호 파리주재 북한무역대표부 대표 가족의 미국 망명은 형제가 1개월 이상의 치밀한 준비를 거쳐 결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 소식통에 따르면 장대사가 결정적으로 망명을 결심하게 된 시기는 김일성 사망 3년상에 참석차 7월8일경 평양에 갔을 때. 그는 자신이 오는 11월초 철수대상자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확인했던 것. 그는 고민에 빠졌다. 이집트대사로 3년째이며 통상적인 임기 5년을 채우지 않은 상태여서 조기철수 조치는 중대한 인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임중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이집트에 한국대사관이 개설된데다 작년에는 아들 철민군이 서방으로 탈출한 사건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이집트로 귀임하자마자 그는 비밀루트를 통해 파리에서 일하는 형 장승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동반망명을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형도 북한내에서 유능한 외화벌이 일꾼으로 인정받아왔으나 작년 한 해 동안 매달 10만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려온 독일로부터의 폐타이어 수입이 올들어 중단되면서 사업부진으로 고민해오던 터였다. 더구나 외화벌이 일꾼들의 부정과 횡령이 크게 늘면서 대대적인 사상점검을 시작했다는 소식도 그를 불안하게 했다. 동반 망명을 결심한 이들 형제는 곧바로 치밀한 준비에 들어갔다. 장승호는 이때부터 사무실을 비울 때 열쇠구멍에 종이를 붙여놓아 다른 사람이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는 등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장대사는 중동국가에 대한 미사일 밀매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미끼로 카이로주재 미국대사관에 망명을 타진했다. 중동국가들의 북한제 미사일은 이스라엘의 최대 안보위협 요인으로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태. 때문에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장대사 형제의 망명을 돕지 않았나 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D데이」를 이슬람교권의 휴일인 22일로 잡은 것은 20일 이집트 정부가 북한에 대해 쌀 5천t을 지원하기로 발표한 것이 한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북한은 장대사에게 쌀 50만t의 원조를 받아내도록 특명을 내렸으나 원조액은 목표량의 1%에 불과했다. 그래서 서둘러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파리〓김상영특파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