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담배社 잇단 有害인정]속셈은 소송 봉쇄

  • 입력 1997년 8월 23일 20시 25분


미국의 유수한 담배회사 회장들이 담배를 계속 팔기 위해 담배의 유해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기이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다음은 21일 말버러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사의 제프리 바이블 회장과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담배로 인한 질병에 드는 의료비용 반환청구소송을 낸 플로리다주의 론 모틀리 변호사 사이에 벌어진 재판전 증인신문내용. ―30년이상 담배를 피워온 어떤 사람이 부분적으로 담배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하는가.(모틀리)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바이블) ―만약 1천명이 그렇게 사망했다면 어떤가. 『그럴 수 있다』 ―그럼 10만명은…. 『그럴 수 있다』 바이블 회장의 『그럴 수 있다』는 마지못하여 한 증언은 지난 50년대 이후 수없이 제기된 담배관련 소송에서 필립 모리스측이 최초로 담배의 유해성을 인정한 기념비적 발언이다. 이어 22일에도 레이놀즈로 유명한 RJR 나비스코사의 스티븐 골드스톤 회장이 흡연은 암을 유발할 수도 있음을 시인했다. 플로리다주를 비롯, 40개주가 별도로 담배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담배회사 사주들이 이처럼 불리한 선례가 될 증언을 하는 이유는 소송을 봉쇄하기 위해서다. 담배회사들은 지난 6월 향후 25년간 3천6백80억 달러의 치료비용을 내놓고 광고규제와 같은 정부의 통제를 받아들이는 대신 40개주로부터 집단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40개주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앞으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재판청구권을 제한한 40개주의 약속은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의회가 문제를 검토하기에 앞서 담배회사들에 유해성을 인정하라고 요구, 담배회사가 줄줄이 「자기 발등을 찍는」 증언을 하게 된 것이다. 더이상 소송이 없게 된다면 곧 취하될 소송에서 무슨 얘기를 못하겠느냐는 전략인 것이다. 미국 최대의 의회 로비스트인 담배회사들은 지난 30개월동안 1천1백30만 달러라는 엄청난 정치자금 기부를 통해 의회를 구워삶아 놓았다. 그 덕택에 이번 균형예산안에서 5백억 달러에 달하는 세금혜택을 받기도 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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