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銀 해외지점,대출 비리-고객무시 『한국 복사판』

  • 입력 1997년 3월 31일 09시 33분


<<한보와 삼미의 부도여파로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금융기관들도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를 계기삼아 금융기관 해외지점의 현황을 특파원들의 현지취재를 통해 살펴본다. 자금차입이나 현지투자 등 나름대로 활발한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있기는 하지만 과시용 또는 인사적체 해소용으로 해외지점을 설치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런던〓이진령 특파원] 런던에서 근무하는 한국의 한 중견은행원은 어떤 때는 자신의 본업이 무엇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 허구한 날 본점에서 오는 고위층이나 본점에서 부탁하는 손님, 또는 자기 은행과는 상관없지만 관례상 돌아가며 접대키로 된 국내 지도층 인사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승용차로 관광도 시켜줘야 하고 밤에는 늦도록 식사와 술대접을 해야 하며 심지어 주말이 낄 때는 물론이고 평일에도 골프접대를 할 때가 더러 있다. 이 은행원은 런던까지 와서 본업과는 상관없는 일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다 못해 외국에 나와서까지 시달려야 할 정도로 고질화한 한국의 접대문화를 원망하기도 한다. 런던에서 영업중인 한국계 금융기관은 은행 17개, 증권 18개, 투자신탁 3개, 보험 13개 등으로 한국금융계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이 금융기관들은 현지법인이나 지점형태로 영업을 한다. 사무소 형태로 소장 한 명, 또는 소장과 직원 한 명 정도가 주재하면서 현지법인 개설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는 곳도 있다. 일반적으로 런던의 한국계 금융기관들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가령 은행의 경우를 보면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같은 은행의 여러개 지점이 나와 있지 않고 교포들을 상대로 한 대출업무에만 매달려 있지도 않다. 한국기업 등을 상대로 한 대출에 자산의 60∼65%를 쓰고 나머지는 현지투자에 돌린다. 이밖에 선진국의 금융동향이나 선진금융기법을 파악, 본점에 보고하고 본점의 중요한 자금조달창구 역할도 한다. 그러나 대외이미지를 고려한 과시용이나 위인설관(爲人設官)으로 지점이나 현지법인 또는 사무소를 개설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더러 있다. 한 고위 금융계인사는 『대부분의 기관들이 선진국에 나와 있으면서도 파생금융상품 등 고도의 선진국 금융업무를 취급하려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경〓권순활 특파원] 얼마전 국내 모 은행의 도쿄(東京)지점을 방문한 한 기업인은 사무실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넓고 화려한데 깜짝 놀랐다. 업무특성상 이 은행이 사무실에 엄청난 돈을 들일 필요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은행 등 국내 각 금융기관이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점포를 설치해 놓고 있다. 지점과 사무소를 합쳐 은행이 22개, 증권사가 6개, 보험사가 7개나 된다. 점포가 많더라도 일본사회에 철저히 파고 들어 영업에 성공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실제로 뿌리를 박은 금융기관은 극소수다. 한국에 진출한 미국계나 일본계 금융기관이 활발한 영업활동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상당수 금융기관이 인사난 해소나 대외과시용으로 해외점포를 신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은행중 5개 정도는 일본지점점포를 없애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한 관계자의 실토다. 은행설립 취지상 해외업무와 별 관계가 없는 은행들조차 무조건 점포부터 만들고 보자는 식으로 지점 등을 설치한 사례도 많다. 금융기관들의 업무행태와 해외주재원들의 근무자세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상당수 은행들은 일본계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의 운용과 관련, 일본계 거래처를 파고들기보다는 국내기업 지점이나 재일동포 자영업자 등 주로 한국인들에게 대출하고 있다. [뉴욕〓이규민 특파원] 뉴욕에 진출한 우리나라 은행들의 영업활동은 해외지점들중 가장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영업대상은 교민이나 국내기업의 현지지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국내 은행들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폐단이 흡사 복제된 것처럼 이곳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뉴욕 플러싱의 한 교민기업인은 작년초 자금을 빌려 쓰고 있던 한국계 A은행으로부터 갑자기 대출금을 상환하라는 통지를 받고 당황했다. 다른 견실한 기업이 지급보증까지 한데다 이자도 꼬박 꼬박 물어왔기 때문에 한번 정도는 문제 없이 기한연장이 될 줄 알았던 것이다. 지점장을 찾아간 그는 『고마운 줄 모르는 사람한테는 대출을 연장해 줄 수 없다』는 엉뚱한 말을 들었다. 퍼뜩 연말에 지점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A은행 지점장은 지나치게 대출 커미션을 챙긴다는 소문이 난 뒤 귀국명령을 받았다. 맨해튼의 한국계 B은행. 지점장이 매우 정치적이라 본국의 유력인사나 현지 한국공관 관리들의 대출부탁을 잘 들어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던중 B은행 지점장은 대출사기에 말려 1백50만달러의 부실채권을 떠 안는 바람에 곤경에 빠졌다. 그러나 본점에서 책임을 물어 인사조치할 때 대출청탁을 했던 유력인사들 가운데 그를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C은행지점장은 무사안일주의자로 교민사회에 소문나 있는 사람이다. 업무를 철저히 하는 것은 좋지만 하자가 없는 대출신청에도 제때 돈을 내준 적이 별로 없다고 교민기업들은 불평한다. 그는 임기를 마치고 무사히 귀국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사석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교민들이 보신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이 지점장은 아직도 건재해 있다. 그러나 한국 금융기관 지점들이 모두 이런 좋지 않은 사례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뉴욕지점들은 외환업무 등을 통해 국내 수출입업자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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