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공산당 76년 약사]21년 창당 77년 개혁

  • 입력 1997년 2월 25일 20시 13분


[김진경기자] ▼창당〓중국공산당은 1921년7월1일 상해(上海)의 한 여학교 교실에서 1차당대회(1전대회)를 비밀리에 개최, 정식으로 창당을 선포했다. 현재 중공은 모두 5천5백만명(95년6월 현재)의 당원을 확보, 세계 최대당원을 보유한 정당이다. ▼장정〓32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침략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사이 공산당세력은 국민당의 蔣介石(장개석)군대에 쫓겨 남부 하남성(河南省)에서 북부 섬서성(陝西省)에 이르는 약 1만㎞의 대장정(1934∼35년)에 나섰다. ▼대약진운동〓46년부터 49년까지 국민당 정부와의 내전에서 승리한 중공은 중국의 산업화를 향해 53년 제1차 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이것이 순조로운 전개를 보이자 56년초 공산당 중앙일부에서 지나치게 높은 목표와 계획이 제기됐다. 周恩來(주은래)와 陳雲(진운) 등이 이 제안의 수정을 주장하자 毛澤東(모택동)은 이들을 반모험주의자로 낙인찍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따라 58년부터 모택동의 지휘아래 중공지도자들은 중국경제의 현대화를 가속화하려는 대약진운동을 전개했다. ▼문화대혁명〓66년 모택동은 대약진운동을 지지하는 과격파의 요청을 받아들여 혁명의 열기를 부추기고자 문화대혁명을 전개했다. 이를 위해 처음에는 도시청년들을 홍위병으로 조직하는 대중동원방식을 취했다. ▼개혁개방정책〓82년 鄧小平(등소평)의 온건한 지도노선아래 공산당은 모택동의 급진주의와는 영원히 결별하는 새로운 당헌을 제정했다. 이에 앞서 81년3월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등소평계열의 신진 실무관료들이 대거 기용됐다. 이로써 경제개혁과 개방정책을 내세운 등소평 趙紫陽(조자양) 胡耀邦(호요방)의 지도체제가 확립됐고 이후 경제현대화에 진력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천안문사건〓1989년4월 호요방 전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대학생들이 그의 명예회복을 위한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이 집회는 일반인이 가세해 경제발전에 따른 정치발전을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했다.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 바로 비극적인 천안문사건이다. 등소평 李鵬(이붕) 楊尙昆(양상곤)은 온건책을 주장하는 조자양 총서기에 대응해 강경책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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