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런던·이진령특파원] 73년전 공산당입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鄧小平(등소평)의 기나긴 정치경력은 곧 중국의 격정적인 공산주의혁명사를 보여주는 거울이나 다름없다. 중국인들에게, 또 毛澤東(모택동)에게 있어 등은 유능한 당원에다 불굴의 생존자였다. 그러나 서방의 눈으로 보면 조그만 체구에다 퉁명스럽게 생긴, 지략과 정신력이 뛰어난 이 사람은 모순덩어리 그 자체였다.
당의 수호에 가차없었지만 그 또한 문화혁명때를 비롯해 서너차례 인위적이고 잔인한 중앙집권적 독재체제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다. 1949년 이후 중국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 농업의 강제집단화와 지주 및 지식인들의 대숙청에 열성을 보였던 그가 1978년 이후에는 중국인들에게 『부유하게 되는 것이 훌륭한 것』이라고 훈계하는 사람으로 변신했다. 그는 또한 「현대화 4대강령」을 통해 부강한 중국을 만들기 위한 창조적이고 실용적인 면을 강조했지만 중국이 다섯번째의 강령, 즉 민주적 개혁과 책임있는 정부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을 일고의 주저도 없이 처벌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인들에게 『쥐를 잡는데 검은 쥐든 흰 쥐든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교조주의적 사회주의이념을 바람에 날려보낸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의 생각은 서방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볼때 중국 공산당이 인민들에게 부귀와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대가로 그는 천안문사태와 당내의 부패 등에도 불구하고 大長征(대장정)세대의 어느 원로들보다 중국인들의 마음에 우뚝 설 수가 있었다.
중국은 지금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는 두가지 이유때문이다. 하나는 중국이 다른 권력기반간의 고도로 복잡하고도 인맥으로 얽힌 이른바 「연대」를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江澤民(강택민)국가주석과 李鵬(이붕)총리, 또 喬石(교석) 전인대상임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집단지도체제는 군부를 배제하고는 어느 누구도 확고한 위치에 설 수가 없다. 두번째로 등의 혁명은 그 자신도 의도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중국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창문을 열자 들어온 「파리들」, 즉 중국식자본주의는 정보의 공유와 정책결정의 위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당의 권력독점을 침식하고 있다. 등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같은 모순들이 어렵사리 가려져왔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이같은 모순들을 외면하기란 더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