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작가(62)가 신간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을 기념해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2016년 장편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이후 10년 만에 발표한 장편이다.
신작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부모를 잃고 거리로 내몰린 고아들이 낡은 붉은색 아코디언 한 대에 의지해 생존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천 작가는 “한국전쟁이야말로 인류사에 드문 거대한 비극이면서 한국 사회 지형을 만든 근원”이라며 “제 나름대로 그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고래’를 떠올린 독자들에게 이번 작품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신화적 상상력과 민담적 서사로 가득했던 ‘고래’와 달리 ‘아코디언’은 판타지적 요소를 거의 배제한 사실주의 소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천 작가는 “‘고래’를 쓸 때는 저도 제가 뭘 쓰는지 몰랐다”며 웃은 뒤 “머릿속에서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통제하지 않고 놓아준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소설은 현실의 부조리와 폭력, 착취, 불평등을 담고 있다”며 “다른 형식으로 쓸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가두려고 애썼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에서 시대를 환기하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음악이다. 작품에는 ‘목포의 눈물’, ‘열아홉 순정’, ‘베사메무초’ 같은 유행가들이 등장하며 일부는 장의 제목으로 활용됐다. 천 작가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릴 때 늘 들려주셨던 곡들”이라며 “‘단장의 미아리고개’ 같은 노래 가사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 끌려가신 이 고개’를 처음 들었을 때는 어떻게 이런 내용이 노래가 될 수 있나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돌이켜보면 당시 노래들은 민중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닿아 있었고 삶을 그대로 드러내려 했다”며 “상처와 트라우마뿐 아니라 익살과 아이러니,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도 담겨 있었다. 노래들의 탄생 배경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 책은 그 시대의 노래들에 바치는 헌사”라고 말했다.
천 작가는 2004년 발표한 장편 ‘고래’의 영어 번역본이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부커상은 제 인생에서 재밌는 해프닝이었다”고 말한 뒤 “시상식에 가기 전부터 제가 상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가족들을 모두 데려왔더라. 그걸 보고 ‘아, 저분이 받겠구나’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30대에는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40대에는 소설가로 활동했으며, 50대에 다시 영화로 돌아갔던 그는 60대에 다시 소설가의 자리로 돌아왔다. 천 작가는 “50대에 영화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소설로 돌아와 남은 삶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앞으로도 소설을 계속 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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