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정민]헤그세스의 ‘스탈린 숙청’… 위기의 美 국방부

  • 동아일보

하정민 국제부 차장
하정민 국제부 차장
1947년 설립된 미국 국방부는 2024년 기준 인력 285만 명, 연 예산 8420억 달러(약 126조3000억 원)의 공룡 부처다. 세계 최강대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조직답게 역대 수장의 면면도 화려하다.

제3대 수장인 조지 마셜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병참 체계의 현대화를 확립했다. 전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서유럽 재건 계획 ‘마셜 플랜’을 주도하며 유럽의 공산화를 막았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은 1990, 1991년 걸프전 당시 국방장관을 지내며 압도적인 승리를 일궈냈다. 부통령 집권 후 테러와의 전쟁 등을 주도해 실패한 과(過)가 있지만 미국의 군사력이 세계 최강임을 입증한 ‘체니 장관’의 공(功)은 크다.

지난해 1월 취임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이 부처의 29번째 수장이다. 주 방위군 장교 출신이라는 다소 보잘것없는 경력과 음주, 성비위, 혼외자 등의 개인사는 업무만 잘 수행하면 논란이 될 여지가 적은 사안들이다. 문제는 장관 재직 후 그가 걸어온 행보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란 전쟁 와중에 랜디 조지 전 육군참모총장, 존 펠런 전 해군장관 등 미군 수뇌부의 경질을 주도했다. 찰스 브라운 전 합참의장, 리사 프란체티 전 해군참모총장, 데이비드 올빈 전 공군참모총장 등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발탁됐지만 그가 쫓아낸 사람을 더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폴 이턴 전 육군 소장은 이를 두고 ‘옛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식 숙청’이라고 우려했다. 리사 머카우스키, 톰 틸리스 등 집권 공화당의 주요 상원의원조차 전쟁 중 군 수뇌부 경질에 우려를 표했다.

또한 헤그세스 장관은 국방부의 사전 승인 없는 보도를 불허하고 자신의 맘에 안 드는 사진을 찍은 기자의 출입을 막는 등 강력한 언론 통제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 공습 당시 민간 메신저 ‘시그널’을 통해 각종 군사 기밀을 유출한 이른바 ‘시그널 게이트’는 뉴욕타임스(NYT) 등으로부터 ‘미 국방부 역사상 가장 어처구니없는 보안 사고’라는 질타를 받았다.

현대 사회의 정교분리 원칙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군 전체에 복음주의 개신교도 신앙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 또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본인이 부인했지만 그가 이란 전쟁을 앞두고 주요 방위산업 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시도했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 또한 도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그를 두고 영미권 언론, 미국 야당 민주당에서는 혹평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 시사매체 애틀랜틱은 “미국에 대한 조롱”, 영국 가디언은 “재앙”이라고 논평했다. 마크 워너 민주당 상원의원은 “역대 최악의 국방장관”이라고 동조했다.

그간 역대 최악의 미 국방장관으로는 베트남전 과오가 있는 로버트 맥너마라 전 장관이 종종 꼽혔다. 그 맥너마라 전 장관조차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수습하고 군 인종통합, 예산 효율화 등을 이뤄낸 공이 있다. 헤그세스 장관이 현재의 행보를 거듭한다면 그는 공 없이 과만 있는 장관으로 남을 수도 있다. 이로 인한 피해의 후폭풍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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