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한 학생이 첫 학기를 마친 뒤 담당 교수를 찾아와 물었다고 한다. “교수님, 저 꼭 이 대학을 다녀야 할까요?”
그가 질문을 던지게 된 계기는 해부학 시험이었다. 인체의 뼈 206개를 무조건 암기해야 하는 방식에 학생은 정색하며 말했다. “뼈 이름은 교과서에 다 있습니다. 외워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교수는 뼈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기본이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학생은 다시 물었다고 한다.
“인체 기능을 유지하면서 뼈 하나를 줄일 경우 어느 뼈가 적절할까요? 사랑니가 기능을 잃어가듯 뼈도 진화 과정에서 하나쯤 줄어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뼈를 추가한다면 어디에 붙여야 인류가 더 잘 진화할 수 있을까요?” 학생의 질문에 교수는 담담하게 답했다. “그 답은 일단 졸업부터 하고 고민해 보게.”
시스템은 대체로 ‘잘 외우는 사람’을 먼저 통과시키도록 설계돼 있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설계가 어떤 종류의 질문을 조용히 걸러내고 있는지는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인공지능(AI)이 뼈 이름 206개쯤은 0.01초 만에 읊어내는 시대다. 기억력은 더 이상 희소한 능력이 아니다. 희소한 것은 따로 있다. 주어진 지식 안에서 아직 아무도 던지지 않은 질문을 찾아내는 힘, 즉 ‘질문력’이다.
창의성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다. 익숙한 것을 문득 낯설게 바라보는 습관이 쌓이는 자리에서 자라난다. 강단에 서며 기억에 남는 학생은 많은 지식을 외운 학생이 아닌, 엉뚱한 질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학생이다. 질문 내용이 틀려도 괜찮다. 질문하는 사람은 이미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에 공을 들여 왔다. 그러나 고령화, 닿지 않는 의료, 일자리의 소멸 앞에서 필요한 것은 빠른 정답이 아닌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이다. 그 질문을 품는 사람이 결국 다음 시대를 만든다.
고유한 시선은 남이 정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묻고, 멈추고, 다시 묻는 과정에서 윤곽이 드러날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어딘가에서 그런 질문을 조용히 품고 있기를,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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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아주대 치과병원장·임상치의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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