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본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대수명을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은 생선 위주의 식단과 절제된 생활습관이 주요 요인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이 같은 통념과 다른 결과를 내놨다. 일본이 더 오래 사는 이유는 건강해서라기보다, 몸이 약해진 이후에도 더 오래 생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생존의 격차, 건강할 때가 아니라 ‘아플 때’ 벌어졌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와 일본 고베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75세 이상 고령자 약 118만 명의 생존 양상을 비교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2026년 국제 학술지 ‘BMC 메디신’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대상자를 돌봄을 받지 않는 집단, 가정 내 돌봄을 받는 집단,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집단으로 나눠 이후 생존 기간을 추적했다.
분석 결과 일본은 스웨덴보다 기대수명이 길었지만, 그 차이는 건강한 상태에서가 아니라 돌봄이 시작된 이후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75세 여성 기준 일본의 기대수명은 15.5년, 스웨덴은 13.7년이었다. 돌봄 없이 생활하는 기간은 10.4년(일본), 9.9년(스웨덴)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반면 돌봄 상태에서의 생존 기간은 5.1년(일본)으로 3.8년(스웨덴)보다 약 1.3년 더 길었다.
결국 두 나라의 수명 격차 대부분은 ‘건강 이후’ 단계에서 발생한 셈이다.
● 식단 미스터리의 반전…비결은 ‘돌봄 시스템’
연구진은 일본의 장기요양보험인 개호보험과 의료·돌봄 체계가 이러한 차이를 만든 핵심 요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일본은 2000년 개호보험 도입 이후 재가·시설 돌봄과 의료 서비스를 촘촘하게 연결해 왔다. 이 체계가 질병 이후에도 생존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돌봄을 받는 고령자 집단에서 일본의 사망률은 더 낮았고, 이 구간이 전체 기대수명 격차의 대부분을 설명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장수를 식단이나 생활습관만으로 설명해온 기존 시각과는 다른 결과다.
오래 사는 이유가 ‘건강 유지’보다 ‘약해진 이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가까울 수 있다는 뜻이다.
● “더 오래 산다”는 것의 다른 의미
다만 이 연구는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일본이 더 오래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늘어난 시간의 상당 부분이 돌봄을 받는 상태에서의 삶이라는 점이다.
연구를 이끈 카린 모딕 교수는 “일본과 스웨덴의 건강한 기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차이는 돌봄이 필요한 단계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기대수명이 길다는 사실만으로 삶의 질까지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 장수의 조건은 ‘건강’이 아니라 ‘이후’
연구진은 일본의 장수가 더 건강한 삶의 결과라기보다, 돌봄을 받는 고령자 집단에서 사망률이 낮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일본이 더 적극적인 의료와 돌봄을 제공하면서 생존 기간을 늘렸을 수 있지만, 이러한 생명 연장이 삶의 질이나 개인의 선택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장수는 단순히 오래 사는 문제가 아니라, 몸이 약해진 이후 어떤 조건에서 삶을 이어가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