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병목 돼버렸다”…AI에 휘둘리는 ‘클로드 블루’ 확산[김현지의 with AI]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25일 14시 54분


개발자도, 비개발자도 피할 수 없는 AI 대전환의 현실

“지금 실리콘밸리는 매우 우울하다. 유능한 시니어 개발자조차 ‘AI가 나를 곧 대체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개발직군 뿐 아니라 사무직도 앞으로 몇 주, 길어야 몇 달 안에 AI 네이티브(AI를 내재화해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태도)가 강제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중략) 지금 에이전트 세 개 이상을 돌리지 않고 있다면 우리의 목숨이 닳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시대. 오늘 하나라도 더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지난 18일 AI 커뮤니티를 강타한 한 마케터의 글 ‘Claude Blue - 실리콘밸리 전체가 우울하다’는 폭주하는 AI 앞에 선 사무직 종사자의 날카로운 위기의식을 담고 있다. 브런치 블로그에서 ‘클래미’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한원준(34) 씨는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뒤 AI 기반 공공조달 입찰 분석 플랫폼 스타트업 ‘클라이원트’에서 마케팅과 기업 성장 전략을 맡고 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우울감이 머지않아 한국에도 상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회사의 공동 창업자 금승도(33) 씨는 “AI가 일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 버겁다”며 “이제 인간이 병목이 된 세상”이라고 말했다.

AI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두 사람이 직접 경험하는 AI 협업의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의 실존적 위기

스타트업의 마케터로 일하는 한원준 씨는 “AI가 곧 자신을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에 실리콘밸리 전체가 우울하다”고 전했다.
스타트업의 마케터로 일하는 한원준 씨는 “AI가 곧 자신을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에 실리콘밸리 전체가 우울하다”고 전했다.
한원준 씨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녀 실리콘밸리에 재직 중인 선후배가 많다. 그는 이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정보를 교환하는데, 그가 전해듣는 소식에 따르면 현지의 분위기는 불과 몇 달 사이에 극적으로 달라졌다.

“올해 2월 초까지만 해도 새 AI 기능이 나올 때마다 ‘와 대박이다’ 하면서 즐기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2~3월 사이 ‘클로드 오퍼스 4.6’과 ‘GPT 5.4’가 출시된 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나 얼마 안 남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죠. 역량을 인정받는 시니어 엔지니어도 예외가 없었어요.”

현지에서는 AI 에이전트와 협업하는 근무 환경이 이미 일상이 됐다. 엑셀, 워드 등 생산성 도구가 에이전트와 연동돼 있어 에이전트만으로 업무를 처리해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관건은 이제 ‘에이전트를 얼마나 잘 지휘하느냐’로 옮겨 갔다.

“사람이 담당하는 핵심은 업무의 처음과 끝이에요. 무엇을 만들 것인지 정하는 것, 그리고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보고 어떤 부분을 보완할지 판단하는 거죠. 어느 부분을 에이전트에 맡기고 어느 부분은 반드시 사람이 검토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설계하는 것 자체가 핵심 역량이 됐다고 해요. 에이전트를 돌리면 토큰 비용이 발생하니 사람과 에이전트의 리소스를 최적화하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라는 것이죠.”

● “내가 병목이구나”

금승도 씨는 웹 데이터 수집·분석을 통해 영업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과업을 혼자 진행하고 있다. 예전이라면 프런트엔드·백엔드·디자인 등 10명이 달라붙어야 할 규모다. 하지만 지금은 AI 에이전트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리기만 하면 되니 업무를 잘 아는 프로젝트 매니저 1명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금승도 씨는 “AI 에이전트의 실행속도가 너무 빨라 AI의 생성물을 인간이 다 검토하기 벅차다”며 “인간이 병목인 세상”이라고 말했다.
금승도 씨는 “AI 에이전트의 실행속도가 너무 빨라 AI의 생성물을 인간이 다 검토하기 벅차다”며 “인간이 병목인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AI가 워낙 빠르게 작업물을 내놓다보니 작업물을 검토하는 일이 숨가빠진 것이다.

“AI는 밤새 일 할 수 있으니까 퇴근할 때도 AI에게 일을 시켜놓고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아침에 출근해 보면 AI가 만든 보고서가 쌓여 있죠. 밤새 나온 결과물을 아침에 검토하고 다시 다음 작업을 지시하는 패턴을 반복하는데 몸도 마음도 지치더군요.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면 논의하는 틈에 자연스럽게 숨 돌릴 시간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AI는 한 번에 다 해오니까 쉴 틈이 없는 거예요.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이 일주일 휴가를 쓰고 난 후에야 회복이 되더군요. 그때 ‘내가 병목이구나’ 싶었죠.”

AI의 실행 속도가 인간의 검토 속도를 추월하는 순간, 사람이 병목이 된다. 한 씨는 실리콘밸리에서는 AI가 생성하는 코드 양이 이미 사람이 리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전했다. 코드 검토를 건너뛰고 그대로 배포하는 사례가 늘면서 시스템 안정성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AI로 빠르게 업무 처리를 하면서도 이 때문에 잦은 오류가 발생하는 현상 역시 AI 전환 과도기의 민낯이다.

● “비개발자도 곧 똑같이 겪는다”

한 씨는 이런 현상이 머지않아 사무직 전반으로 번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개발직군이 아직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AI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AI를 충분히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AI 잘 쓰네’라고 여유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AI를 덜 쓰고 있는 거라고 봐요. 실리콘밸리의 탑티어 개발자들은 이미 AI를 너무 세게 밀어붙인 나머지 ‘내가 병목이다’는 감각에 도달했고 바로 그 불편함이 진짜 AI 시대를 살고 있다는 신호라는 거죠.”

그의 일상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고객을 만나 기획하고, 직접 글을 써서 SNS에 올렸다. 지금은 고객과의 대화를 녹음해 AI에 넘기고 “정리하고 기획서 만들고 포스팅용 자료 만들어서 올려”라고 지시할 뿐이다. 직접 하는 일은 고객을 대면하는 것 하나로 줄었다.

“경쟁자가 AI에 더 많은 일을 시켜 더 많은 결과물을 쏟아낸다면, 저도 결국 AI가 내놓는 방대한 산출물을 미처 다 검토하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겠죠.”

● “창업만이 답인가”

대화는 자연스럽게 커리어의 미래로 이어졌다. 금 씨는 “기업 입장에서는 책임지고 의사결정할 수 있는 사람까지만 필요해질 것”이라며 “AI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설 자리를 잃는 건 자명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조건이 무엇인지, 지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한 씨의 전망은 한층 구체적이다. 100명이 일하는 회사가 있다면 세 명이 에이전트를 활용해 같은 결과물을 더 낮은 비용으로 내놓는 회사가 나타날 것이다. 기존 회사는 버티기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그 세 명짜리 회사가 안전한 것도 아니다. 에이전트를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면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한다. 살아남는 곳은 결국 소수가 에이전트를 능숙하게 오케스트레이션하는 구조를 갖춘 조직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두 사람의 대답은 같았다. “AI에게 일을 시키고 아무도 나를 고용하지 않는 시대엔 내가 나 자신을 고용하는 것, 결국 창업이 궁극적인 답이 되지 않을까요?”

실리콘밸리의 그 시니어 엔지니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 씨는 전했다. 창업을 막연히 동경하기만 했던 그가 지금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순수한 흥미가 아닌 절박함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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