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지적에도 국민설득-관용 외면… 野 쇄신 없고 與 입법 독주

  • 동아일보

[계엄 1년, 끝나지 않은 그림자] 〈2〉 계엄의 강 건너지 못한 국회
국힘, 대선 패배 후 쇄신 내분만… 전투력 강조 ‘탄핵 수렁’ 못 벗어나
민주, 鄭대표 취임뒤 강공 드라이브… 힘 앞세워 상임위 운영-법안 처리
前 국회의장들 “정치실종 끝내야”

헌법재판소는 올해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12·3 비상계엄을 위헌·위법하다고 판단함과 동시에 국회도 반성해야 한다며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소수 의견 존중, 관용과 자제, 국민 설득을 주문했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이 초유의 정치 위기를 겪고도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여야 정치 원로들은 “대한민국이 ‘정치 실종’ 상태에 빠져 있다”며 “여(與)도 야(野)도 자당이 아닌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국민 설득 없는 국민의힘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국정을 주도하여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국민을 설득할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수적 우세를 앞세워 국회를 운영했지만 윤 전 대통령 또한 22대 총선에서 국민의 마음을 얻어 국회 구성을 새롭게 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헌재의 지적에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국민 신뢰를 회복할 쇄신의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의힘은 대선 패배 직후인 7월 초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쇄신 작업을 시도했다. 하지만 안철수 당시 혁신위원장은 친윤(친윤석열)계를 겨냥한 ‘인적 쇄신’ 요구로 당 주류와 갈등을 빚다 혁신위 구성 발표 15분 만에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후임 윤희숙 혁신위원장도 윤 전 대통령 부부의 전횡에 대한 사과와 절연, 계파정치 청산 등을 내걸었지만 지도부와의 충돌 끝에 좌초됐다.

결국 이어진 8·22 전당대회에서 ‘강성 반탄’을 앞세운 장동혁 대표가 당선된 후 국민의힘에선 “잘 싸우는 것이 혁신”이란 구호 아래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 찬탄파를 밀어내면서 쇄신 논의는 물밑으로 가라앉은 상태다. 헌재는 ‘선거를 통해 나타난 국민의 의사를 겸허히 수용하고 더욱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계기로 전국 순회 장외집회를 열어 “이재명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며 투쟁에 집중하고 있다.

● 관용과 자제 없는 민주당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회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내란정당’으로 규정하며 일방통행식으로 국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 취임 3일 만인 8월 5일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야당과 재계의 반대가 거셌던 ‘노란봉투법’과 ‘더 센 상법 개정안’으로 불리는 2차 상법 개정안, 검찰청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같은 방식으로 통과시켰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지켜 온 관행들도 여야의 극단 대결 속에 사라지고 있다. 민주당 소속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에 대한 법사위 간사 선임을 상임위 표결로 무산시킨 가운데, 법사위는 역대 최악의 상임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당은 12월 임시국회에서 ‘사법개혁안’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이 민생 법안들까지 무더기로 필리버스터를 하겠다고 나서자 소수당의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필리버스터를 쉽게 무력화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취지다.

비상계엄 이후 1년을 지켜본 정치 원로들은 한목소리로 여야의 정치 행태를 우려하고 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부분 부분의 목소리들을 모아 어울려 내는 게 정치와 정당의 역할”이라며 “목소리 큰 소수가 마치 다수인 양 강경한 발언만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정세균 전 의장은 “15대 국회부터 의정 활동을 했는데, 이 정도로 정치가 실종됐던 적은 없었다”며 “여당은 야당을 포용하고, 야당은 국정 운영에 협조하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문희상 전 의장도 “민주주의의 첫 출발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정치 전반이 국민 통합을 생각을 해야 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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