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개척한 여성”… 14년 만에 돌아온 에비타

  • 동아일보

‘에바 페론의 삶’ 뮤지컬 ‘에비타’ 3번째 韓 공연
배우-조명에 집중… 힘 있는 군무도 재미 더해

에바 페론의 삶을 다룬 뮤지컬 ‘에비타’의 한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에바 페론의 삶을 다룬 뮤지컬 ‘에비타’의 한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아르헨티나의 성녀일까, 혹은 포퓰리즘의 상징일까.

지난달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에비타’는 사실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이가 별로 없다.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자 배우, 정치인이었던 에바 페론(1919∼1952)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에비타는 에바의 애칭인 ‘귀여운 에바’란 뜻이다.

27세에 영부인이 된 에바는 가난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지도자이자, 대중의 감정을 능숙하게 이용한 정치적 전략가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뮤지컬 ‘에비타’는 그를 단선적으로 규정하는 대신 다층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에비타’는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을 만든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1978년 처음 선보인 작품. 미국 토니상 7관왕에 올랐으며,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무대에 올려져 왔다.

한국에선 2006년 초연, 2011년 재연 이후 14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 공연은 올 7월 영국 웨스트엔드 리바이벌(Revival·이전 공연을 새로 만듦) 버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에바는 시골에서 태어나 배우를 꿈꾸며 수도로 온 뒤 라디오 스타, 배우 등으로 활동했다. 훗날 대통령이 되는 후안 페론과 결혼한 뒤 남편 못지않은 권력을 휘둘렀다. 남성들을 발판으로 삼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허락된 선택지가 많지 않았단 걸 감안해야 한다.

에바의 복합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장치는 해설자 ‘체(Che)’다.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에서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로 ‘민중의 시선’을 상징한다. 냉소와 의문, 때로는 공감으로 에바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끈다.

음악은 ‘에비타’의 가장 큰 힘. ‘돈트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는 뮤지컬을 잘 몰라도 친숙한 곡. 드라마틱한 멜로디와 서사가 결합해 강렬한 무대를 만든다. 소녀의 야망을 그린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새 나라를 꿈꾸는 ‘어 뉴 아르헨티나(A New Argentina)’ 등 33곡이 대사 없이 ‘성스루(sung-through)’로 이어진다.

무대는 화려한 장치 대신 배우와 조명에 집중해 간결하게 연출했다. 앙상블의 힘 있는 군무도 재미를 더한다. 파워풀한 보컬이 필수인 에바 페론 역은 김소현, 김소향, 유리아가 맡았다.

14년 만에 돌아온 ‘에비타’는 “우리에겐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에서 나아가 “지도자는 왜 필요한가”란 질문을 던진다. 관객은 각자의 자리에서 에바를 바라보며 어떤 답을 찾게 될까.

#에바 페론#뮤지컬 에비타#광림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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