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석 프로야구 LG 단장(56·사진)은 20년 넘게 일기를 쓴다. 일기장을 새로 살 때마다 맨 앞장에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2001년 11월 26일’을 적어둔다. 1992년 입단해 원클럽맨으로 10년을 선수로 뛴 LG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날이다. 당시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LG가 스프링캠프를 떠난 2002년 1월 18일 ‘실직자’ 차명석은 눈 덮인 서울 잠실구장 관중석에서 20분을 펑펑 울었다.
이로부터 21년이 지난 2023년 11월 13일 그는 잠실구장 관중석에서 또 한번 눈물을 쏟았다. LG가 29년 만에 통산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날이었다. 그가 2019년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구단주에게 “5년 안에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을 만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날이기도 했다.
1990년과 1994년 우승팀 LG가 V3로 가는 데는 29년이 걸렸다. LG는 2003∼2012년 프로야구 최초로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이라는 ‘흑역사’도 썼다. 차 단장도 코치로 ‘암흑기’ 대부분을 함께했다. 하지만 V3를 V4로 만드는 데는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 단장 부임 후 LG는 7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두 번 정상에 올랐다. 이 기간 누적 승률(0.576·564승 416패)도 1위다. 한국프로야구에서 2020년대에 3년 동안 두 번 우승한 팀은 LG뿐이다.
TV 해설자로 일하던 그가 LG 단장직을 제의받았던 2018년만 해도 LG는 시즌을 8위로 마친 ‘약팀’이었다. 당시 늦둥이를 임신 중이던 아내는 현장 복귀를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친정 팀을 외면하지 못했다.
차 단장은 부임 후 석 달을 ‘잠실 라이벌’ 두산이 강한 이유를 공부하며 보냈다. 그리고 “3년 내 우승”을 외치는 대신 우승 전력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두산의 ‘화수분 야구’를 벤치마킹 해 퓨처스리그(2군) 육성 매뉴얼부터 바꿨다. 코치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 훈련 성과와 목표를 단장에게 직접 설명하도록 했다. 전문성이 필요한 부서장은 그룹 단위 순환 보직에서도 제외시켰다.
올해 LG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신인 3명이 이름을 올렸다. 2005년 두산이 신인 4명을 엔트리에 올린 이래 최다 인원이다. 현재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화수분은 다름 아닌 L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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