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진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에 등록된 8만 8905명(평균 연령 62.4세)을 대상으로, 1주일간 손목에 착용한 센서를 통해 측정한 총 1300만 시간 이상의 야간 조도 데이터를 분석하고 최대 9년 반 동안 추적 관찰했다.
■ 어두운 방보다 밝은 방에서 잔 사람, 심장병 위험 50% 이상 높아
참가자들은 평균 야간 조도(illuminance)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나뉘었다. 0~50백분위(0.62럭스): 달빛 혹은 어두운 방 수준 51~70백분위(2.48럭스): 희미한 실내 조명 71~90백분위(16.37럭스): 일반 침실 조명 91~100백분위(105.3럭스): TV나 스마트폰 불빛 수준
분석 결과, 가장 밝은 빛(91~100백분위)에 노출된 사람은 어두운 환경(0~50백분위)에서 잔 사람보다 △심부전 위험이 56% △심근경색 위험이 47% △관상동맥질환과 심방세동 위험이 각각 32% △뇌졸중 위험이 28% 더 높게 나타났다.
이 결과는 운동, 식습관, 수면 습관, 흡연·음주, 유전적 요인 등을 모두 보정한 뒤에도 유지됐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밤의 불빛, 생체시계 교란시켜 심장에 부담”
연구를 이끈 다니엘 윈드레드(Daniel Windred) 플린더스대 FHMRI 수면건강연구소 연구원(박사)은 “이번 연구는 단순히 밤에 밝은 빛을 쬔다는 사실만으로도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질 수 있음을 대규모 데이터로 입증한 첫 사례”라며 “밤의 인공조명이 생체시계를 교란해 심혈관계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우리 몸은 아침이면 코르티솔이 분비돼 신체활동을 돕고 저녁에는 멜라토닌이 분비돼 수면 준비를 한다. 멜라토닌 호르몬은 체온, 혈압, 심박수 등 생체리듬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빛을 쬐면 분비가 억제된다.
연구진은 “야간의 빛 노출이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면, 혈압과 혈당 조절, 혈액 응고 등 대사 과정이 교란돼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 여성·젊은 층에서 특히 민감… “여성의 생체시계가 빛에 더 예민”
공동저자인 션 케인(Sean Cain) 플린더스대 의과대학 교수는 “여성은 빛에 의한 생체시계 교란에 남성보다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보통 여성은 남성보다 심혈관질환에 대한 생리적 보호 효과가 있지만, 밤에 밝은 빛에 자주 노출되면 그 차이가 사라진다”고 밝혔다.
또 다른 공동저자인 앤드루 필립스(Andrew Phillips) 의대 부교수는 “이 문제는 교대 근무자나 대도시 거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보거나, TV를 켜둔 채 자는 일상적인 습관도 심혈관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 “심장 건강을 지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불 끄기”
심혈관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이며, 한국에서도 암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연구진은 “야간 조명은 식습관·운동 부족·흡연처럼 관리 가능한 위험 요인으로 봐야 한다”며 조금만 신경 쓰면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윈드레드 박사는 “커튼을 완전히 닫고, 조명은 어둡게 하고, 잠들기 전에는 스마트폰이나 TV 화면을 피하는 것이 심장 건강을 지키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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