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선생님에게 속상한 일이 있을 때[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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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부정적 감정 표현에 서툰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감각이 예민하고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만 5세 남자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아이가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멍청이! 선생님이 가버렸으면 좋겠어!”라고 소리치는 일이 벌어졌다. 사실 그 말을 하는 상황이 되기까지 아이가 마음이 상할 만한 일이 있긴 했다.

놀이가 끝나서 장난감 정리를 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도 열심히 정리를 하다가 앉아서 정리를 하던 같은 반 여자아이의 손가락을 실수로 밟게 되었다. 손가락을 밟힌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남자아이는 당황해서 “어 어 어” 하고만 서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교사가 와서는 그 여자아이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뭔가 좀 억울하다고 생각한 아이는 사과를 하지 않고 버텼고, 교사는 이번에야말로 이 아이를 단단히 가르쳐야 한다고 느껴서 호되게 혼을 냈다. 이 아이는 감각이 예민하고 감정 표현을 잘 못하다 보니 이전에도 교사에게 지적을 받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다가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온 터라 화가 쌓여 있던 아이는 마지막에 교사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아이가 어린이집 교사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자세하게, 조금 더 친절하게 그 설명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아, 원장님이 들었는데, 너 요즘 자꾸 지적받아?” 아이는 “지적이 뭐예요?”라고 질문했다. 조금 자세히 설명했다. “아니, 이런 것 있잖아. ‘○○야, 그러지 마. ○○야∼ ○○야∼’라고 자꾸 부르는 거.” 아이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예…”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 넌지시 물었다. “그래서 기분이 좀 안 좋아? 너 선생님한테 ‘멍청이!’ 그랬다며?” 아이는 뭔가 부끄러운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곤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원장님, 제가 나쁜 사람이에요?”라고 물었다. 내가 아이에게 “너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 왜 그런 생각을 하지?”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나쁜 말을 하면 나쁜 사람이래요”라고 말했다. 내가 아이에게 “네가 선생님한테 ‘멍청이’라고 한 건, 사실 ‘나, 기분 나빠요. 나, 선생님한테 화났어요.’ 그 얘기잖아?” 했더니, 아이는 냉큼 “맞아요”라고 했다.

“사람은 마음을 말해야 하는 거야. 화가 났을 때는 화가 났다는 표현을 상대에게 해줘야 돼. 그래야 상대도 알거든. 그런데 말이야. 그럴 때는 ‘나, 기분 나빠요. 선생님한테 화났어요’ 이렇게 말해. ‘멍청이’ ‘바보’보다는 그게 훨씬 좋은 방법이야”라고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아이는 “아∼ 선생님한테 화났을 때는 ‘멍청이’ 이렇게 하지 말고, ‘나, 선생님한테 기분 나빴어요. 화났어요’ 이렇게 말하라고요? 그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요?”라고 재차 확인했다.

그래서 다시 “그래, ‘멍청이’는 기분 나쁠 수 있어. 네가 선생님에게 ‘멍청이’라고 한 것은 진짜 멍청하다는 말은 아니잖아. ‘선생님 가버렸으면 좋겠어’라는 말도 ‘나, 선생님 때문에 너무너무 속상해요’ 이 얘기잖아”라고 아이의 감정을 수긍해주었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맞아요!”라고 했다. “그때는 ‘나, 진짜로 선생님 때문에 속상해요’ 이렇게 말하면 돼. 이게 ‘가버렸으면 좋겠어요’보다 더 좋은 방법이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가버렸으면 좋겠어요’가 나쁜 말이에요? 나쁜 말 하면 나쁜 사람이에요?”라고 물었다. 아이는 그동안 그런 말을 많이 들어온 듯했다. 나는 “아니, 너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 그런데 ‘나 선생님 때문에 진짜 속상해요’가 더 좋은 방법이야”라고 정리해주었다.

이럴 때 아이에게 “나쁜 말 하면 나쁜 사람이야∼”라고 해버리면, 아이의 감정을 실을 언어가 억압된다. 아이가 감정 표현을 하지 않으면 부모나 교사는 아이의 마음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다. 따라서 “나쁜 말이야”보다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 있어.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좋은 표현이야”라고 가르쳐줘야 한다.

물론, 아이가 그런 말을 쓰는 것을 권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쁜 말’로 규정해 버리면, 아이는 그 말을 쓰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그 말을 사용할 때 들었던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분노가 폭발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해버릴 수도 있다. 뭐든 말로 표현하고, 말로 해결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려면 “나쁜 말을 하면 나쁜 사람이니 하지 마”라는 표현보다 “이것이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 훨씬 좋아”라고 적절한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선생님#속상한 일#부정적 감정#표현에 서툰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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