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옥자’를 말하다

  • 여성동아
  • 입력 2017년 6월 16일 1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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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 옥자 〉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그 시작은 칸국제영화제다.


지난 5월 19일(현지 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언론 시사회에는 기자와 관객 2천여 명이 몰려 영화 〈 옥자 〉를 향한 관심을 드러냈다. 봉준호(48) 감독은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생명과 동물,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해 그린 영화다.
〈 옥자 〉를 칸에서 선보여 기쁘다”고 말했다.

사실 이 영화는 한동안, 아니 영화가 공개된 지금까지도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다. 이유는 영화 내용이 아닌 상영 방식 때문. 영화 〈 옥자 〉는 극장 개봉을 하지 않고 온라인 동영상으로 서비스되는 영화다. 영화 제작에 소요된 5백60억원의 비용은 전부 인터넷 텔레비전 네트워크 기업 넷플릭스가 댔다. 6월 29일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1백90개국에 스트리밍될 예정으로, 극장 상영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한국뿐이다.

앞서 프랑스극장협회는 〈 옥자 〉의 칸영화제 진출에 반발하는 성명도 냈다. 극장에서 상영된 뒤 3년이 지나야 스트리밍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프랑스 국내법이 그 근거였다. 결국 칸영화제는 내년부터 프랑스 내 극장 상영작만 경쟁 부문에 출품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급기야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인 스페인 출신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영화제 개막식에서 “개인적으로 큰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영화는 황금종려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극장용 영화의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영화제의 수상작은 5월 28일 발표된다.

논란의 중심에 선 영화 〈 옥자 〉를 만든 봉준호 감독의 생각은 어떨까. 프랑스 칸으로 떠나기 전인 지난 5월 15일, 그가 기자회견장에서 입을 열었다.

〈 설국열차 〉 이후 4년 만이네요. 이번 영화가 어떤 내용일지 무척 기대돼요.
제가 띄엄띄엄 영화를 만드는 편이라서요(웃음). 영화 제목이 〈 옥자 〉인데, 사실 옥자는 사람이 아닌 동물입니다. 돼지와 하마를 합쳐놓은 듯한 비주얼을 가졌죠. 영화엔 옥자를 사랑하는 소녀 미자라는 인물이 등장해요. 세상의 모든 사랑엔 장애물이 있듯이, 영화에도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복잡한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풍자의 요소들이 많은 영화라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신 것 축하드려요.
두렵습니다(웃음). 감독 입장에서는 자신의 새 영화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칸영화제만큼 영광스럽고 흥분되는 자리가 없을 거예요. 동시에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라가는 생선’의 느낌을 같이 받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죠. 까다로운 관객들이 시골 마을에 모여서 영화를 본다? 흥분되지만 두려운 경험이에요. 하지만 훌륭한 분들과 함께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자신감은 있어요. 영화를 어서 보여드리고 싶네요. 그래야 영화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요.

홍상수 감독의 작품도 함께 진출했는데 경쟁하게 된 소감은 어떠세요.
경쟁 부문이라고 하니까 정말 경쟁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네요(웃음). 하지만 영화는 경쟁하거나 저울질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으니까요. 사실 전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를 줄곧 수집해올 정도로 오랜 팬이에요. 최근에 속도를 어마어마하게 내고 계셔서 감히 제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죠. 그 창작의 에너지가 굉장히 부러워요. 이번 〈 그 후 〉라는 작품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지난해 7월 16일, 미국 뉴욕의 한 거리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  옥자 〉를 촬영 중인 봉준호 감독과 틸다 스윈튼.
지난해 7월 16일, 미국 뉴욕의 한 거리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 옥자 〉를 촬영 중인 봉준호 감독과 틸다 스윈튼.

심사위원 중에 박찬욱 감독님도 계시는데 수상에 대한 기대는 없나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표현이 있지 않나요?(웃음) 사실 박찬욱 감독님은 워낙 공명정대한 데다 취향도 굉장히 섬세한 분이세요. 본인 소신대로 심사하시리라 봅니다. 칸영화제는 섬세하고 예민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모여서 눈이 벌게질 때까지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는 자리예요. 누군가가 선동한다고 해서 휩쓸리는 사람들이 아니죠. 박 감독님도 재밌게 즐기면서 심사하면 좋겠어요. 〈 옥자 〉의 두 시간은 제가 보장할 테니까요(웃음).

영화 개봉 방식에 대해 말이 많았어요. 전통적인 극장 개봉 방식을 택하지 않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이유가 있었나요.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예산 규모가 큰 데다 내용이나 스토리가 너무 과감하고 독창적이라는 이유로 망설이는 회사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넷플릭스가 선뜻 손을 내밀었죠. 사실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거장 감독을 제외하고는 이 정도 규모의 예산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전권을 주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런데 넷플릭스에서 그 행운을 제게 주셨고, 제 입장에선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죠. 영화가 어떻게 유통되고 배급되는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저는 감독이자 창작자예요. 얼마나 창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죠.

극장 개봉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프랑스극장협회와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이 불편한 기색도 드러냈어요.
영화를 볼 수 있는 편안하고 좋은 방법들은 점점 늘어날 거예요. 지금의 논란은 그 과정에 있는 작은 소동일 뿐이죠. 며칠 전 1960년대 만들어진 프랑스 영화를 봤는데 “시네마는 죽었어”라는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당시 TV가 등장하면서 다들 영화 산업이 망할 것을 걱정한 거예요. 그런데 어떤가요. 지금도 극장과 TV는 공존하고 있잖아요. 극장 개봉 영화든 스트리밍 서비스 영화든 결국엔 서로 공존하게 되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나요.
제가 영화를 대하는 방식은 작품이 상영되는 자리가 어디든 똑같아요. 최고로 아름다운 결과물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죠. 우리는 그냥 영화를 찍은 거예요. 큰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찍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요. 큰 스크린에서 봤을 때 아름다운 영화는 작은 화면으로 봐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방식이 영화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있어요.
극장 상영이 끝난 영화들은 DVD나 케이블 채널로 볼 수 있잖아요. 나쁘게 만들어진 DVD는 화면의 네 귀퉁이가 이상하게 잘려나가 있고, 케이블 채널에선 중간 광고를 삽입해 몰입을 방해하기도 해요. 솔직히 그럴 때면 감독 입장에선 굉장히 마음이 쓰라려요. 그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넷플릭스의 방식이 좀 더 영화를 존중하고 보존하는 길이지 않을까요.


틸다 스윈튼과는 〈 설국열차 〉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에요.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요.
틸다 스윈튼이 〈 설국열차 〉 프로모션차 한국에 왔을 때 처음 제안을 했어요. 그땐 시나리오가 완성된 상황도 아니었고, 대략적인 드로잉밖에 없었죠. 동물이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라고 했더니 재밌겠다고 하더라고요. 틸다가 굉장한 동물 애호가예요. 반려견도 대여섯 마리 키우고, 닭도 열 마리 이상 키우거든요(웃음). 사실 틸다는 캐스팅했다기보다 창작의 동반자라고 할 정도로 깊게 참여를 해줬어요. 작품에 대해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미국의 미술 감독님을 소개해주기도 했죠. 엔딩 크레딧에도 ‘co-producer’로 틸다 스윈튼의 이름이 올라갔어요.

제작 과정에서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나요.
넷플릭스의 지원으로 오로지 작품에 공을 들일 수 있어서 굉장히 기쁘고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거기서 오는 부담감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자유의 기쁨과 함께 엄청난 책임감이 밀려왔다고나 할까요.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누가 못 하게 했어”라는 핑계도 못 대니까요. 만약 이 영화에서 좋지 않은 구석이 있다면 100% 제 책임이에요. 미리 말씀드릴게요.

관객들이 이번 영화를 어떻게 봐줬으면 하나요.
칸영화제 관계자가 경쟁 부문 진출작을 선정하는 날, 영화 〈 옥자 〉를 두고 “정치적인 영화”라고 소개하더라고요. 맞아요. 프랑스 사람들은 그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봉준호 감독이 처음으로 그려낸 사랑 이야기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관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고도 해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영화죠. 요즘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1천만 명이 넘었다고 하더라고요. 동물을 사랑하는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동물을 가족으로 두신 분들만이라도 다 와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웃음).

사진 REX 사진제공 넷플릭스 디자인 최정미

editor 정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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