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내가” 뒤친아 된 엄친아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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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속 모범생들 ‘뒤늦은 반란’

드라마 속 ‘엄친아’가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명문대 박사 정마리(이하나)는 자신을 교수로 만들려는 엄마에게 반항한다(위 사진). KBS ‘파랑새의 집’ 속 오민자(송옥숙)는 교사를 그만두고 방송작가를 하겠다는 딸의 머리채를 잡고(가운데 사진) MBC ‘여왕의 꽃’의 마희라(김미숙)는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겠다며 아들을 협박한다. KBS MBC 화면 캡처
드라마 속 ‘엄친아’가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명문대 박사 정마리(이하나)는 자신을 교수로 만들려는 엄마에게 반항한다(위 사진). KBS ‘파랑새의 집’ 속 오민자(송옥숙)는 교사를 그만두고 방송작가를 하겠다는 딸의 머리채를 잡고(가운데 사진) MBC ‘여왕의 꽃’의 마희라(김미숙)는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겠다며 아들을 협박한다. KBS MBC 화면 캡처
20대 후반만 걸리는 사춘기 바이러스라도 유행한 것일까?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며 모범생 인생을 살아온 ‘엄친아’ ‘엄친딸’이 반기를 들었다.

요즘 지상파 드라마에는 ‘뒤친아(뒤통수 친 아이)’들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정마리(이하나), ‘파랑새의 집’의 강영주(경수진), MBC ‘여왕의 꽃’의 박재준(윤박)은 각각 명문대 박사(대학강사), 초등학교 교사, 성형외과 의사 등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진 이들이다. 그러나 “이젠 내 인생을 살고 싶다”며 방송작가 등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나서려 한다.

자신의 인생은 뒷전으로 삼고 자식을 뒷바라지하다 ‘네 인생이 내 인생’이 돼 버린 엄마들은 ‘뒤친아’가 돼 버린 자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가 설정한 좌표에서 이탈하려는 자식을 ‘원위치’시키기 위해 머리채를 잡는 것은 애교 수준. ‘여왕의 꽃’ 희라는 아들 재준 앞에서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위협한다. 엄마들의 명분은 ‘세상의 엄혹한 경쟁’이다.

드라마 속에서 이런 상황을 주된 갈등으로 묘사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김은영 문화평론가는 “1990, 2000년대에는 사춘기 청소년이나 대학생의 자아 찾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많았지만 지금은 중고교와 대학에서 더이상 그런 여유를 찾기 어려워졌다”며 “최근에는 직장을 잡은 20대 후반 주인공들이 사춘기(자아 찾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캐릭터들은 자식이 성인이 된 뒤에도 헬리콥터처럼 주변을 맴돌면서 매사를 간섭하는 ‘헬리콥터 맘’과 관계가 있다고 분석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엄마의 과보호 아래서 자란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엄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갈등 구조의 등장은 시청층의 고령화를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40대보다 50대 이상의 시청자 비율이 과거보다 높아지면서 해당 세대의 자식 나이에 해당하는 20대 후반 전후의 주인공과 티격태격하는 내용이 다뤄진다는 것. 하 평론가는 “주부 시청자들은 그의 자식 세대가 속을 썩인다는 내용에 감정 이입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엄친아의 반란’은 판타지일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88만 원 세대’ ‘3포 세대’ 등의 말이 나오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청년에게 ‘자아 찾기’는 배부른 고민이라는 얘기다. 하 평론가는 “틀에 박혀 꽉 짜인 생활을 하는 청년들에겐 드라마 주인공들이 좋은 스펙을 다 버리고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가는 것이 대리만족을 주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엄친아#뒤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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