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영치덕을 위한, 영치덕에 의한 드라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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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채널4 ‘콜리션’

드라마 ‘콜리션’에 나온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마크 덱스터·왼쪽). 실제 캐머런 총리와 외모, 말투, 제스처까지 흡사하다. 영국 채널4 TV 화면 촬영
드라마 ‘콜리션’에 나온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마크 덱스터·왼쪽). 실제 캐머런 총리와 외모, 말투, 제스처까지 흡사하다. 영국 채널4 TV 화면 촬영

인터넷 신조어 중에 ‘영치덕’라는 단어가 있다. ‘영국 정치’와 오타쿠를 뜻하는 ‘오덕’을 합친 단어로 ‘영국 정치 오타쿠’를 뜻한다. ‘영치덕’들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에드 밀리반드 노동당수 같은 영국 정치인의 인터뷰나 관련 기사를 찾아보며 이들의 캐릭터와 관계를 ‘연구’한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 총리의 질의응답 시간인 PMQ(Prime Minister‘s Question time)를 꼬박꼬박 시청하고 이들의 과거나 정적과의 관계를 알기 위해 영국 정치사 전반을 파고들기도 한다. 영국 드라마, 영화, 배우 등을 좋아하다가 정치까지 관심이 넓어진 사람들이다.

이런 영치덕을 위한, 영치덕에 의한 드라마가 있다. 지난달 말 영국 채널4에서 방영된 ’콜리션(Coalition·연정)‘이다. 드라마는 2010년 총선으로 40여 년 만에 ’헝 의회(hung parliament·과반 의석 이상을 점유한 정당이 없는 의회)‘ 상황이 연출되자 보수당과 노동당이 제 3당인 자민당과의 연정을 위해 서로 밀고 당기기를 했던 며칠간을 다룬다.

’실화에 기반했고 관련자에 대한 심도 있는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거쳤다‘는 안내문을 내보내는 드라마답게 엄청난 반전이나 갈등이 등장하진 않는다. 대신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배우들이 실제 정치인의 습관이나 말투를 꽤 그럴싸하게 따라하며 은근슬쩍 풍자하는 한편 그들의 이면을 보는 ’깨알 재미‘를 제공한다. 세련되고 귀족적인 이미지의 캐머런 총리(당시 보수당 당수)는 파워 포인트로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를 보며 상대와 협상을 하는 반면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는 종이에 휘갈긴 메모를 보며 거친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더듬거리며 상대와 통화를 하는 식이다. 상대방을 “식은 죽 먹기”라던가 “옥스퍼드 졸업? 좀 낫네”같은 대사로 신랄하게 평가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더 재미있는 건 차기 영국 총선이 다음달에 열린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이번 총선에 재등장할 예정이다. 또 2010년 ’헝 의회‘가 될 때처럼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질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이었다면 당장 ’방송의 정치적 영향력‘ 운운하며 누군가가 들고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지만 영국에선 조용하다. 그만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선진국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치가 드라마 ’나부랭이‘에 영향 받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일까.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영치덕#콜리션#캐머런 영국 총리#영국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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