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男과 활달女의 ‘썸’타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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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개봉 ‘모모세 여기를 봐’ ‘깨끗하고 연약한’을 통해 본 日 청소년 영화의 멜로 공식

일본 청소년 멜로물을 보면 손만 잡아도 화들짝 놀라고, 치마만 살랑거려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볼 때마다 손발은 물론이고 뇌까지 오그라들지만, 왠지 또 찾게 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기 때문일까. 이 첫사랑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모모세 여기를 봐’(왼쪽)와 ‘깨끗하고 연약한’. 봉봉미엘·제콘플러스 제공
일본 청소년 멜로물을 보면 손만 잡아도 화들짝 놀라고, 치마만 살랑거려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볼 때마다 손발은 물론이고 뇌까지 오그라들지만, 왠지 또 찾게 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기 때문일까. 이 첫사랑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모모세 여기를 봐’(왼쪽)와 ‘깨끗하고 연약한’. 봉봉미엘·제콘플러스 제공
“아,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지난달 30일 함께 개봉한 ‘모모세 여기를 봐’와 ‘깨끗하고 연약한’은 멀지 않은 친척을 연달아 만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일본 영화다. 둘 다 달곰쌉쌀한 첫사랑을 다뤄서겠지만, 이런 기시감이 꼭 두 작품에 한정된 건 아니다. ‘10대 학원 로맨스’는 일본 대중문화에서 상당한 지분을 확보한 장르. 영화 역시 ‘러브레터’(1995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년), ‘하나미즈키’(2010년) 등 끊이질 않았다. ‘모모세…’와 ‘깨끗하고…’를 중심으로 일본 청소년 멜로물의 첫사랑 공식을 짚어봤다.

○ 사랑과 우정 사이의 답답한 줄타기

‘모모세…’의 노보루(다케우치 다로)는 평범하고 소심한 남학생. 속 터지게 만드는 이런 캐릭터는 일본 10대 로맨스물에서 빠지지 않는 존재다. 끙끙 앓다가 고백조차 흐지부지. 도대체 얘들은 신선이야 뭐야. 일본 특유의 민족성이 반영된 건가. 활달한 척하는 모모세(하야미 아카리) 역시 짝사랑 곁을 맴돌 뿐이다.

‘깨끗하고…’의 칸나(나가사와 마사미)와 하루타(고라 겐고)도 오십보백보다. 오랜 소꿉친구인데 속내는 드러낼 줄 모른다. 키스까지 해놓고 우정인지 사랑인지 헷갈려한다. “어떤 고등학생이 의리로 입 맞추냐”고 뒤통수 한 대 치고 싶다. 서로 애정을 확인하기까지 밀고 당기는 이른바 ‘썸’타는 장면은 빛을 과다 노출시켜 화면이 뽀얗다.

나중에야 감정을 터뜨리는 전개도 닮았다. 참다 참다 봇물처럼 쏟아내니 극적이긴 하다. 근데 그마저도 딱 부러지진 않는다. 노보루가 끝내 외친 한마디는 “모모세, 여기를 봐.” 뭐, 어쩌라고. 하루타가 칸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겨우 “지금 간다”다.

첫사랑 여학생의 생김새도 박제 수준이다. 칸나는 ‘러브레터’의 10대 후지이(사카이 미키)의 환생인가. 긴 생머리에 쌍꺼풀 짙은 눈, 똑똑한 모범생인데 사랑 앞에선 ‘아무 것도 몰라요’ 표정. ‘모모세…’에선 조연인 간바야시(이시바시 안나)가 이렇다. 활달한 여학생은 모모세처럼 꼭 짧은 커트머리에 입을 삐죽거린다.

○ 아날로그 감성을 건드리는 자전거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품이 자전거다. 자전거는 첫사랑의 아날로그 감성을 대변한다. 그들이 청정 무공해 운송수단을 타던 동네는 현재 거주하는 교통지옥 대도시가 아니다. 노보루가 15년 만에, 칸나가 8년 만에 찾는 소도시 혹은 촌마을은 향취마저 변함없다. ‘첫사랑=고향=자전거’ 등식은 마음을 따끈하게 데우는 그때 그 시절을 일깨운다. 작품마다 어른이 된 주인공이 시골에 돌아가 당시를 떠올리는 액자구조를 반복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종종 첫사랑 스토리는 ‘부재(不在)의 미학’으로 이어진다. ‘러브레터’ ‘세상의 중심에서…’처럼 ‘깨끗하고…’는 상실의 상처가 여진을 남긴다. 가슴속 응어리로 남았다가, 그걸 받아들여야만 다음 한 발을 내딛는다. 러브레터의 “오겐키데스카(잘 지내나요)”는 21세기에도 여전하다.

이런 작법은 일본 영화산업의 마케팅 전략이 반영된 결과다. 잘나가는 청춘스타를 출연시켜 10, 20대를 잡고 자극 없는 첫사랑 코드로 중장년층까지 끌어당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이런 장르는 대개 대형 방송사 자본으로 제작된다”며 “TV드라마처럼 폭넓은 연령대의 관객을 타깃으로 잡는 일본의 전형적인 청춘멜로 화법”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모모세 여기를 봐#깨끗하고 연약한#일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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