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신의’에서 팜파탈로 나오는 화수인(신은정)은 가슴이 깊게 파인 중국 스타일의 의상을 입는다. KBS ‘대왕의 꿈’ 무열왕(최수종)도 흰색 의상에 V자형 관을 쓰는 등 현대적 상상력을 더했다. KBS SBS 제공
“‘아랑’(신민아) 옷으로 만들어 줄 수 있나요?”
요즘 한복가게 주인들은 난처한 주문을 받곤 한다. 사람들이 사극 드라마 주인공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와 비슷한 한복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는 것. ‘대체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옷이냐’는 비판도 있지만 전통 한복과는 다른 새로운 디자인의 사극 의상은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요즘 사극 의상은 ‘고증’에 얽매이지 않는다. 극중 의상은 철저하게 스토리와 캐릭터에 맞춰 제작된다. 제작 초기단계부터 극중 인물의 성격과 이야기 흐름을 분석해 의상 색깔과 디자인을 정한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SBS ‘신의’의 주인공인 고려무사 최영(이민호)의 옷은 다부진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검은색을 중심으로 어깨에 가죽을 달고 목 부분에 깃을 세웠다. 벨트를 두껍게 만들어 강렬함을 더했다. ‘팜파탈’인 화수인(신은정)은 가슴이 깊게 파인 의상을 입고 나온다. 정경희 디자이너는 “실제 고려인들은 소매 폭을 넓게 입었지만 극에서는 현대적 감각에 맞게 소매 폭을 최대한 줄이고 속살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룩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MBC ‘아랑사또전’도 주인공의 캐릭터를 의상에 담아냈다. 아랑의 치마는 전통 한복(자주색)과 달리 핑크색이다. 치마 하단에는 노란색 흰색 등 여러 색의 띠를 둘렀다. 봉현숙 MBC 미술센터 국장은 “천방지축 아랑을 표현하기 위해 채도가 높은 원색의 ‘비비드 컬러를 선택했다”며 “치마 밑단 여러 색깔의 띠는 아랑이 처녀귀신이 되기 전 정숙한 여인인 ‘설인’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또 은오(이준기)도 둥근 선의 사또 복장과 달리 직선 위주의 각진 옷을 입는다. 까칠한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다음 달 8일 방영되는 KBS ‘대왕의 꿈’의 주인공인 신라시대 무열왕(최수종)의 경우 극중 심경의 변화에 따라 옷이 달라진다. 어린 시절은 당돌한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차가운 색감의 옷을 입는다. 왕이 된 뒤에는 흰색 옷을 입고 ‘V’자형 뿔 모양의 관을 쓰게 된다.
배우들의 요구나 신체 조건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지기도 한다. ‘신의’의 의상팀은 “빈티지한 느낌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연배우 이민호의 요구에 따라 최영 옷을 일부러 구기고 낡게 만들었다. 아랑의 치마는 신민아의 다리 길이에 색깔 분할을 맞췄다.
사극 제작진이 고증의 부담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통 의상을 시도하는 이유에 대해 KBS 관계자는 “방송사 간 사극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조금이라도 더 튀어보려고 볼거리 위주의 의상에 신경 쓴다”고 전했다. 자료가 풍부하게 남아 있어 고증이 상대적으로 쉬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도 요즘엔 디자인적인 상상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아랑사또’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중기다.
반면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세종의 초상화 속 용포 색깔, 자수를 꼼꼼히 재현했다. 다음 달 개봉하는 ‘광해’도 1600년대 의상을 그대로 따랐다. ‘신의’와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모두 담당한 정경희 디자이너는 “영화계는 여전히 고증을 따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KBS 아트비전 관계자는 “영화는 철저한 고증으로 질을 높일 수 있지만 수십 회를 방송해야 하는 드라마는 고증대로만 하면 의상이 지나치게 단조로워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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