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노을에 핀 꽃은 더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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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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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남격’ 청춘합창단 시청률 ‘나가수’ 턱밑 추격
평균나이 62세… 가슴먹먹한 사연들에 감동의 밀물

‘청춘합창단’에 참여하고 있는 유관희, 이만덕, 권대욱 씨(왼쪽 위부터). 유 씨는 현직 교수이고, 이 씨는 사업가, 권 씨는 호텔리어다. 한 주부 합창단원은 말했다. ‘40년 만의 외출’이라고. 심양순 김삼순 손해선 씨(오른쪽 위부터)에게 청춘합창단은 ‘소풍’ 같은 설렘이다.KBS TV 화면 촬영
‘청춘합창단’에 참여하고 있는 유관희, 이만덕, 권대욱 씨(왼쪽 위부터). 유 씨는 현직 교수이고, 이 씨는 사업가, 권 씨는 호텔리어다. 한 주부 합창단원은 말했다. ‘40년 만의 외출’이라고. 심양순 김삼순 손해선 씨(오른쪽 위부터)에게 청춘합창단은 ‘소풍’ 같은 설렘이다.KBS TV 화면 촬영
권대욱 씨(61)는 서울 시내 특급호텔의 최고경영자다. 일류대를 졸업하고 36세에 건설회사 사장직에 올랐다. 남들은 “화려한 삶을 살았다”고 부러워하지만 그는 “한 번도 내 삶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대학 입학 통보 이후 최대로 기쁜 일”이 생겼다.

김삼순 씨(56·여)도 ‘남의 인생’을 살았다. 직업을 묻자 “주업은 식구들 밥 해주는 것이고, 부업은 술 먹고 들어온 딸 해장국 끓여주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세 딸을 키우느라 지난해 난생처음 해외여행을 했다. 그런 김 씨가 요즘 ‘내 삶’을 살기 위해 매주 9시간씩 버스를 타고 김해 집과 서울을 오간다.

두 사람이 ‘나의 삶’을 실현하는 무대는 ‘청춘합창단’이다. KBS2 예능 프로그램 ‘해피 선데이’ 속 코너인 ‘남자의 자격’의 합창 프로젝트다. 록밴드 ‘부활’의 김태원이 지휘하는 청춘합창단은 50∼80대 단원 40명으로 구성돼 있다. 평균 나이는 62세. 4월 10일부터 몰려든 3000명의 지원자 가운데 서류심사와 오디션을 거쳐 뽑힌 사람들이다.

이제 막 합창단을 꾸린 상태여서 제대로 화음이 나지 않는데도 시청자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예능이 이렇게 울려도 됩니까” “가슴이 먹먹합니다”라는 댓글을 올리며 감동을 표현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 이 프로의 시청률은 15%로 정상급 가수들이 기량을 뽐내는 경쟁 프로인 MBC ‘나는 가수다’(15.3%)를 턱밑까지 추격했다(AGB 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

청춘합창단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보다 40명의 단원이 62년간 살아온 인생의 무게를 실어 부르는 노래의 울림이 크기 때문.

심양순 씨(68·여)는 2007년 망막에 구멍이 뚫려 시각장애 2급 장애인이 됐다. 1남 2녀를 키우며 암도 이겨냈지만 다시 어둠을 만났다. 그는 노래에서 빛을 찾았다. 남편이 악보를 확대해 주고, 딸은 피아노 반주로 연습을 돕는다. 지난주 방송국에 가려고 폭우 속에서 장애인 택시를 기다리는 1시간 동안 동료 단원인 강정순 씨(53·여)가 손을 잡고 기다려줬다. “합창단 이후 다시 태어났어요. 꿈을 꾸게 됐으니까요.”

이만덕 씨(56)는 담즙을 받아내는 주머니를 차고 오디션에 참가했다. 간경화와 신장병을 함께 앓아 복막 투석 부작용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그는 최근 큰조카와 작은조카에게 간과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합창곡 가사처럼 내 삶은 가도 가도 고통이 끝나지 않을 듯했지만 눈사람이 녹은 자리에 코스모스가 피어나듯 삶을 이어가고,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감당해내기 위해 무대에 선 이도 있다. 손해선 씨(59)는 지난해 9월 남편 서희승 씨(연극배우)와 사별했다.

뮤지컬 배우 출신인 손 씨는 배우 서재경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시름에 젖어서만은 살 수 없었어요. 하늘의 남편에게 ‘손해선이 슬픔을 이기고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회계학자인 유관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60)에게는 교수가 오락 프로에 출연하는 ‘일탈’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그는 “모두가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하모니를 이뤄 가는 모습에서 큰 배움을 얻고 있다”고 했다.

청춘합창단의 최고령 단원은 84세의 노강진 씨다. 젊었을 때 ‘주부 합창단’의 멤버로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노래했던 경력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 이제 소리가 잘 안 나온다’며 속상해했다. 두 살 연상인 남편이 “자기 관리 잘해서 TV에 더 곱게 나오라”고 ‘잔소리’를 해줘 힘을 얻는다고 했다.

“해는 노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고 정열적인 노을처럼 남은 생을 노래하며 뜨겁게 살고 싶습니다.” 양송자 씨(75·여)의 말에서 40명 ‘청춘’들의 바람을 읽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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