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쾅! 1977년 전북 이리역 폭발사고…故이주일, 실신한 하춘화 업고 뛰어…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11일 07시 00분


1977년 이리역 폭발 대참사로 목숨을 잃을 뻔한 하춘화(왼쪽)는 1980년 이주일의 리사이틀을 연출하며 ‘보은’의 무대를 꾸몄다. 스포츠동아DB
1977년 이리역 폭발 대참사로 목숨을 잃을 뻔한 하춘화(왼쪽)는 1980년 이주일의 리사이틀을 연출하며 ‘보은’의 무대를 꾸몄다. 스포츠동아DB
1977년 오늘, 밤 9시15분께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 창인동 이리역에서 천지를 흔드는 진동과 함께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화물 열차에 실려 있던 다이너마이트용 화약 800상자, 뇌관 36상자, 초안폭약 200상자, 흑색화약 3상자 등 총 30톤이 넘는 엄청난 폭약이 폭발한 것이다.

이리역 반경 500m 안의 건물이 흔적도 없이 전파될 정도로 피해가 엄청났다. 이 사고로 인구 13만의 도시에서 58명이 사망했고 14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가 나던 그 시각, 가수 하춘화는 역 앞의 삼남극장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리사이틀을 하고 있었다. 당시 ‘하춘화 쇼’의 진행자가 바로 이주일이었다. 1965년 샛별악극단에서 데뷔한 이주일은 1970년대 톱스타 하춘화의 리사이틀 사회를 단골로 맡았다.

이리역에서 터진 폭발의 충격은 삼남극장에도 미쳤다. 전기가 끊어지고, 지붕이 내려앉으며 극장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500여명의 관객이 있던 이날 극장에서만 1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주일은 실신한 하춘화를 업고 지옥과도 같은 현장을 빠져나왔다. 이주일은 훗날 이 상황을 소개한 신문 칼럼에서 “밥줄 끊기겠다 싶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하춘화를 업고 숙소에 도착해 자동차로 2시간을 달려 군산도립병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하춘화는 우려만큼 다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주일이 폭발물 잔해에 맞아 뒷머리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고 있었다. 이주일은 4개월간의 대수술과 입원 치료를 거쳐 건강을 회복했다. 1979년 하춘화가 은퇴를 선언하자, 이주일은 이듬 해 TV를 통해 코미디언으로 변신했다. 그는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등 유행어를 낳으며 코미디계의 최고 스타로 우뚝 섰다. 그해 말 이주일은 자신의 이름으로 리사이틀을 열었고 은퇴한 하춘화는 이리역 참사때 빚진 은혜를 ‘연출’의 이름으로 갚았다. 사고 이후 18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비로소 한 무대에 섰다. 1995년 KBS 1TV 추석특집 ‘KBS 빅쇼’에 출연한 이들은 사고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며 눈물로 우정을 확인했다.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은 2002년 8월27일 이주일이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또 한 번 팬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하춘화는 당시 사건과 이주일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연락이 뜸해지면서 오해도 생겨나고 10년간 연락을 하지 않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주일이 폐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위로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이주일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