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포커스] 박상원 “공연날이면 나는 분장실 열쇠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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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0일 07시 00분


“푹 빠져야 하죠” 연극 ‘레인맨’에서 주인공 자폐증 환자 레이먼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박상원.
“푹 빠져야 하죠” 연극 ‘레인맨’에서 주인공 자폐증 환자 레이먼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박상원.
■ 연극 ‘레인맨’ 자폐증 열연 박상원

가장 먼저와 문열고 ‘나를 버리기’
기도하듯 레이먼 캐릭터 젖어들어
올해 비주얼 저널리즘 대학원 입학
제 자들이 10학번인데 나도 10학번


“아닌 게 아니라 이젠 뭐 어느 정도 …. 사람들이 평상시에도 ‘레이먼’이 나온다고 하니까, 다행인 거죠.”

오후 6시쯤 박상원(51)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분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2월 19일부터 3월 28일까지 이 극장에서 연극 ‘레인맨’의 레이먼 바비트 역으로 출연 중이다. 1989년도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맡았던(동생 찰리는 톰 크루즈였다) 자폐증 환자, 바로 그 역.

기자는 그에게 “한 달 이상 레이먼으로 살았으니 이제 ‘물’이 한창 오르셨겠다”라고 질문을 던진 참이었다.

박상원은 공연이 있는 날이면 가장 먼저 극장에 나온다. 스태프보다 ‘출근’이 더 빠르다. 분장실 키를 직접 받아 문을 연 후에 의상을 입고, 레이먼에 젖어 들기를 기다린다. 레이먼의 호흡, 손짓과 발짓, 말투를 실제로 행하며 몇 시간을 보낸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가 있는 날에도 레이먼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지금까지 햄릿이든 뭐든 역을 맡으면 캐릭터를 ‘박상원화’해서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레이먼은 달라요. ‘박상원’을 버리고 레이먼으로 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늘 ‘미소년’같던 그도 어느덧 선배, 동료보다는 후배들과 무대에 서는 일이 많은 나이가 됐다. 요즘 후배들을 보며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았다.

“많죠. 하하! 너무 많지. ‘일찍 좀 다녀라’, ‘공연 전에 집중 좀 해라’, ‘분장실 분위기가 그래서 되겠니’하고 잔소리하느니 그냥 현장에서 몸소 보여주려고 합니다. 공연 전 정숙히 집중하면서, 기도 이상의 기도를 하는 모습이랄지, 분위기랄지. ‘아, 무대란 것이 그냥 막 왔다 갔다 하는 데가 아니고 뭔가가 있는 모양이구나’하고 스스로 느끼게 해 주는 거죠.”

박상원은 배우뿐만 아니라 교수, 경남영상위원회 위원장 등 직함이 여럿이다. 그 중에는 ‘사진작가’ 명함도 있다. 개인 전시회도 여러 번 가졌고, 지난해에는 한일 공동주최 미술전에 참가해 일본미술단체 삭일회가 주는 최고의 상인 삭일회 상을 받았다.

마침 그는 인터뷰가 있기 전날, 상명대 대학원 비주얼 저널리즘 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제자들이 10학번인데, 나도 10학번이 됐다”며 웃었다.

레이먼은 극 중에서 “변하면 위험하다. 똑같은 게 좋은 거다”라는 대사를 수십 차례나 읊는다. 하지만 배우는 ‘변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쪽이 아닐까. “배우가 천의 얼굴을 가지면 좋겠지만 어차피 저는 그릇이 안 되니까, 한 가지 얼굴만이라도 된다면 다행인 것 같습니다. 꼭 바뀌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봐요. 생선가게에서 문어는 문어스럽고, 갈치는 갈치스러워야지요. 고등어가 새우 흉내 내는 건 좀 그렇잖아요? 무조건 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잘’ 변해야지요.”

‘변신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요즘 연예인들 틈에서 꿋꿋한 그의 ‘뚝심’은 신기하다 못해 아름다울 정도다.

박상원의 레인맨은 28일에 1차 막을 내리지만 곧 연장공연에 들어간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는 연장 때 ‘찰리, 레이먼을 함께 연기하면 좋겠다’ 싶은 후배들을 점 찍어놓고 요즘 틈만 나면 전화를 걸고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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