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 ‘나이의 유리천장’ 깨트린 장다르크 장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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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4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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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깎이 성공…다시 슬럼프… 7전 8기 인생
●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도 잘 할
수 있다
● 한가인 빠진 자리에 치밀한 준비로 캐스팅 돼
● 차기작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 르네 젤위거 같은 역할로…

한 여배우가 있다.

아역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해 18세에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다. 여배우로서 만개한 20대 내내 여주인공의 친구 역할로 만족해야 했다. 주연으로 거론되다가도 촬영 직전 교체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방송사 후미진 화장실에서는 통곡 소리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만년 조연' 그녀가 이름 석 자를 알린 건 만 서른한 살이 넘어서다. 첫 주연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불식하고 거짓말처럼 신들린 복수 연기를 펼쳤다. 시청률도 그녀의 편이었다. 결국 그해 방송사의 연기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롱런할 거라 여겨졌던 그녀는 7년간 내리막길을 걸었다. 마지막 3년은 아예 출연작조차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 가던 그녀는 지난해 자신을 버린 남편에게 화끈하게 복수하는 팜파탈 1인 2역으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연말 방송사 연기대상 무대에 선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기쁨과 슬픔이 얼룩진 얼굴로 "3년 동안 슬럼프였는데, 털고 일어서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울먹였다.

이 롤러코스터 인생역정의 주인공은 서른여덟의 여배우 장서희다.

오뚝이 같은 배우 장서희는 현재 SBS 수목드라마 '산부인과'(최희라 극본, 이현직·최영훈 연출)에서 주연을 맡아 유능한 산부인과 전문의 서혜영 역을 열연 중이다.

미니시리즈는 그녀에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드라마의 꽃'으로 불리는 미니시리즈는 젊은 여배우만 기용하는 것이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에서 장서희는 소아청소년과 의사 이상식(고주원 분), 오랜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 왕재석(서지석)과 멜로 연기를 해야 한다. 고주원과 서지석은 모두 1981년생 29세로 장서희 보다 9살 어리다.
1월 27일 SBS 수목드라마 ‘산부인과’ 제작발표회에서 탤런트 고주원, 장서희, 서지석(왼쪽부터)이 다정하게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1월 27일 SBS 수목드라마 ‘산부인과’ 제작발표회에서 탤런트 고주원, 장서희, 서지석(왼쪽부터)이 다정하게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 '막장 드라마'의 아이콘, 미니시리즈에 안착하다

"'장서희가 복수극이 아니라도 잘할 수 있구나'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요."

장서희는 일주일 내내 주요 촬영장소인 서울 화양동 건국대학교병원과 경기도 파주세트장을 떠나지 않으며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의 하루 일과는 새벽 6시에 시작된다. 메이크업을 포함해 촬영 준비를 하다가 드라마의 주 무대인 건국대학교 병원으로 향한다. 촬영은 다음날 새벽 3시경에 끝난다.

하루 2~3시간 쪽잠을 자며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지만 그녀는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장서희가 맡은 천재적인 수술 능력을 갖춘 산부인과 의사 서혜영도 유부남 윤서진의 아이를 임신한 채 일에 몰두한다. '워커홀릭'이라는 점에서 장서희와 서혜영은 닮았다.

2월 초 드라마 초반 촬영에 에너지를 쏟아 붓다 피로가 겹쳐 실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현재는 많이 회복한 상태인 듯했다.

장서희의 매니저 우성진 실장은 "특별히 건강관리를 하지 않을 정도로 현재 체력이 상당히 좋다"고 말했다.

장서희의 호연 덕분에 '산부인과'는 방영 후 3주간 시청률이 1%씩 상승했다. 2월 3일 9.5%의 한자릿수 시청률에서 출발한 '산부인과'는 3주 만에 시청률을 12.2%까지 끌어올렸다. 경쟁자가 KBS 드라마 '추노'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선전이다.

하지만 장서희는 여기저기 알아주는 사람이 많아 "체감 시청률은 그 이상"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지난해 SBS '아내의 유혹'에서 장서희는 시청률 불모지였던 7시대에서 시청률 40%대의 신화를 이룩하며 '장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장서희가 입거나 걸치고 나왔던 의류, 액세서리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의 헤어스타일도 유행했다.

'시청률의 여왕' 장서희의 출연작이기 때문인지 '산부인과' 시청자 게시판에는 그녀의 연기를 칭찬하는 글이 유독 많다.

게시판에는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흡입력과 전달력이 최고인 배우", "매회 많은 에피소드로 산만해질 수 있는 구성인데도 장서희 덕분에 구심점이 잡힌다"는 글이 상당수 올라와 있다.

특히 딸을 낳은 산모가 출혈이 지속돼 자궁적출을 하지 않으면 죽는 상황인데도 2대 독자인 남편과 시어머니가 아들 낳아야 한다며 수술을 반대하는 장면에서는, 복수극에서 다져진 장서희 특유의 또박또박 지르는 대사 연기가 뛰어났다는 평이 많다.

"지금 부인은 자궁적출을 해도 생존할 확률이 50% 이하, 더구나 보호자가 동의서에 사인을 안 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고 출혈이 계속되고 있으니 20% 미만입니다. 난 환자를 살려야겠으니 살리고 이혼을 하든지 대리모를 구하든지 하세요. 어차피 자궁 적출을 안 하면 죽는데, 그럼 고민할 필요 없이 새 장가 들면 되겠네요!"

중 화권 한국 드라마 관련 사이트에서도 '산부인과'는 핫 이슈다. '인어아가씨'로 다져진 한류스타 장서희의 저력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소속사에 따르면 '인어아가씨'로 인연을 맺은 중국 팬들은 장서희의 소속사로 중국차와 초콜릿을 보내오거나 직접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우성진 실장은 "중국어를 쓰는 팬들의 전화가 많이 걸려오는데, 중국어를 하는 직원이 없어서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 치밀한 노력으로 '산부인과' 캐스팅 뚫어

극중 산부인과 의사인 장서희는 실감나는 제왕절개수술 연기를 했다. SBS 제공.
극중 산부인과 의사인 장서희는 실감나는 제왕절개수술 연기를 했다. SBS 제공.

지금으로선 장서희가 아닌 서혜영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원래 주인공 서혜영 역은 장서희의 차지가 아니었다.

'산부인과' 제작진은 일찌감치 20대 후반의 젊은 여배우를 고려하고 있었다. 유력한 후보로 한가인(28) 등이 물망에 올랐다. 여자 주인공의 나이에 맞춰 삼각관계를 형성할 의사 이상식과 왕재석도 또래의 배우를 캐스팅한 것이다.

장서희에게 미니시리즈의 벽은 높았다. 2002년 MBC '인어아가씨' 2009년 SBS '아내의 유혹'으로 연기 대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지만 모두 일일극이었다. 또 다른 주연작인 MBC '회전목마'와 '사랑찬가'는 모두 주말극이었다.

미니시리즈에서 멜로 연기를 하기엔 장서희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점이 흠이었다.

막장 드라마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도 문제였다. "신 앞에 맹세합니다. 정교빈(남편), 신애리(내연녀)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라는 그녀의 표독한 대사는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회자될 정도였다. '복수하는 여자'로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은 여배우로선 마이너스였다.

'아내의 유혹' 성공 이후 장서희는 여러 감독을 찾아다니며 미니시리즈 출연 여부를 타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손에 잡힌게 '산부인과' 대본이었다.

다운증후군 태아를 포기하려는 아나운서 출신 재벌가 며느리, 교통사고로 뇌사상태가 된 산모, 바람을 피워 생긴 아기가 누구의 아이인지 걱정하는 여자, 갓 태어난 쌍둥이 중 한 명이 어린선 증세로 사망하는 것을 보는 아버지 등의 에피소드가 이어졌다. 낙태 성폭행 십대 임신이 나오지만 '막장' 코드로 풀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산모와 아기를 향한 강한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드라마였다.

더구나 '산부인과'는 그녀의 전작 '아내의 유혹'을 연출한 오세강 감독이 책임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이다.

장서희는 무조건 이 드라마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인어 아가씨'와 '아내의 유혹'을 할 당시 살사 댄스, 탱고, 악기를 배웠던 것처럼 이번에도 무시무시한 노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배역을 준비했다.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외모. 머리를 과감하게 바짝 잘라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전략을 택했다. 어려 보이도록 피부 관리도 열심히 했다.

이렇게 자른 머리는 '아톰머리', '장서희 커트'로 불리며 제작보고회 당시부터 화제가 됐다. 일 중독에 빠진 전문직 여의사 캐릭터를 도시적이고 시크한 분위기로 연출했다며 평가도 좋았다.

장 서희는 서울 강남 산부인과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도 참관했다. 디테일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연기도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나온다는 게 그녀의 설명. 그녀는 당시 경험을 되살리며 "제왕절개는 물론 아기가 태어나는 광경도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어머니들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노력하는 자에게 길이 열리나니, 기회는 장서희에게 돌아갔다.

애초 유력한 주인공으로 거론되던 한가인이 극중 유부남과의 불륜과 임신을 이유로 서혜영 역을 고사한 것. '준비된 연기자' 장서희가 낙점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산부인과' 제작진은 "사실상 여성 원톱 드라마(여자 주인공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드라마)인 만큼 이를 극을 잘 이끌만한 관록의 연기자가 필요했다"며 "풍부한 출연 경험과 그간 시청률 면에서도 큰 성과를 보였던 장서희가 적역이었다. 그녀의 저력을 이번 작품에서도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신뢰를 표했다.

결국 장서희의 치밀한 노력 덕분에 젊은 여배우만 주로 기용하던 미니시리즈의 거대한 '유리 천장'이 뚫린 셈이다.

캐스팅이 확정되고서 장서희는 나이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던 얘기를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감독님은 제가 33살인 줄 알고 캐스팅하려다가 나이가 많은 것을 알고 실망하셨다고 했어요. 그만큼 이 산부인과 의사 역을 맡게 된 것은 행운인 거죠."

그녀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장서희는 완벽한 수술 연기를 위해 매 수술 장면마다 먼저 산부인과 의사 2명의 조언을 듣고 시작한다. 동작마다 세세히 기술적인 교육을 받고 촬영에 임한다고. 전문 의학용어와 분만기구 사용법 등은 매일 시험을 치는 기분으로 외우기 때문에 레지던트가 된 기분이란다.

▶ '산부인과'는 이제부터 시작


SBS 수목드라마 ‘산부인과’에서 주인공인 산부인과 전문의 서혜영 역으로 출연 중인 장서희. SBS 제공.
SBS 수목드라마 ‘산부인과’에서 주인공인 산부인과 전문의 서혜영 역으로 출연 중인 장서희. SBS 제공.
극중 장서희가 연기한 서혜영은 손놀림이 빠르고 논문편수도 압도적인 유능한 산부인과 의사지만,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산모이기도 하다. 산부인과 교수 임용이라는 꿈을 품은 그녀에게 뱃속 태아는 '장애물'일 수도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서혜영은 매 회마다 낙태를 고민한다. 산부인과 의사인 그녀 역시 그녀를 찾아온 다른 산모들처럼 잔인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식물인간 상태에서, 암에 걸린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태아를 지키는 환자들을 보며 그녀 역시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이상식과 왕재석은 그녀의 곁에서 의지가 되어 주려 한다. 이 와중에서 삼각 멜로 라인이 형성되는 등 이제부터가 장서희의 연기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될 때이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앞으로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낙태와 출산의 기로에 선 복잡한 인물을 장서희가 어떻게 그려낼 지가 궁금하다"며 "지금까지는 드라마가 서혜영이라는 역할을 다소 뻔하게 그린 감이 있다. 그게 배우의 문제인지 구성의 문제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캐릭터에 힘을 조금 빼고 좀 더 입체적으로 고민스럽게 다뤄줬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산부인과' 이후 장서희가 하고 싶은 연기는 어떤 것일까. 그녀는 "이제 겨우 '산부인과'가 10회 방송됐는데 '산부인과'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만약'이라는 단서를 붙여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르네 젤위거 같은 엉뚱하면서도 발랄하고 귀여운 골드미스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이정연 스포츠동아 기자 annj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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