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전우치와 의형제, 강동원 VS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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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4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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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의 강동원은 특유의 \'엄친아\' 분위기를 걷어내고, 능글능글하고 장난기 넘치는 캐릭터로 열연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전우치\'의 강동원은 특유의 \'엄친아\' 분위기를 걷어내고, 능글능글하고 장난기 넘치는 캐릭터로 열연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아름다운 배우의 용감한 도전…서른, 잔치는 시작됐다
지금 극장가에는 강동원의 영화 두 편이 동시에 상영되고 있다.

하나는 지난 해 12월 개봉한 '전우치'이고, 다른 한 편은 이번 주 개봉한 '의형제'이다. 장기상영 중이던 전우치의 스크린 수가 줄어드는 참에 새 영화가 개봉을 했으니 강동원이 강동원을 이어받은 셈이다.

큰 키에 반듯한 얼굴, 그리고 우수에 가득 찬 눈빛. 그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연예계에서도 눈에 띌 만큼 특별한 외모를 가졌다. 바로 눈앞에 놓고 보아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조각 같은 얼굴과 황금비율이라 불리는 월등한 신체적 조건은 일반 관객들은 물론 영화촬영감독협회와 같은 전문가 집단에서도 상을 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다.

스타에게 이런 뛰어난 외모는 큰 무기이자 장점인지라, 그는 데뷔 이후 줄곧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준비기간 없이 바로 주연으로 발탁되는 특혜와 행운도 누렸다. 모델 경력이 전부였음에도 무명이나 단역 시절 없이 바로 드라마와 영화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되었던 것이다.

▶ '지나치게' 잘 생긴 얼굴… 장점이자 덫

하지만 그의 장점은 굴레로 작용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영화 속 그의 캐릭터를 기억하기 보다는 강동원의 미소를 기억했다. 그에 관한 한 '연기가 예술'이라는 기사보다는 '콧날이 예술'이라는 기사가 먼저 떴다. 첫 영화였던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는 극중 최희철보다 '망가진 강동원'에 방점이 찍혔고, '늑대의 유혹' 에서도 연기에 대한 평가보다는 '꽃미남의 매력발산'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의 너무도 화려한 외모가 배우로서 성장하는 데에는 칼날의 양면처럼 작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 개봉한 두 편의 영화는 이제 그를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때가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배경도 캐릭터도 주제도 모두 다른 이 두 영화 속에서, 그는 마치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봐 달라며 시위하듯 온몸으로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전우치에서 그는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싶어 하는 속물적 근성을 다분히 가진 도사로 열연한다. 요괴를 잡아달라는 요청에는 대의명분을 따지기 전에 '내가 왜?'라는 질문으로 응수하고 의로운 일 보다는 여자에게 관심이 더 많다. 찌그러진 갓에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는, 또 허세도 부리고 장난도 잘 치는 악동. 소위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건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뜻 봐도 귀공자 강동원의 이미지와는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묘하게도 극중 배역에 잘 스며든다. 자신의 개 초랭이(유해진 분)를 대하는 얼굴에는 거만하면서도 익살스러운 표정이 베어있고 요괴들과 대적하는 몸짓은 허술하거나 코믹하다.

길쭉길쭉한 팔다리로 소화해내는 액션 신 역시 스피디한 편집과 화려한 화면구성으로 꽤나 볼만하면서도, 치열하다거나 파괴적이라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건들건들 놀고 있는 느낌이다. 바로 정교한 무협검객의 진검 승부가 아닌, '어차피 눈을 속이는 환상'인 도술을 충분히 이해하며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놈 목소리'에서 들려주었던 살인마의 목소리는 또 어떠한가. 분노를 불러일으키던 그 스산한 목소리는 어느새 과부에게 수작을 거는 느끼한 목소리로 변모해 있다. 송강호도 김윤석도 아닌, 강동원적 불량함의 맛이 독특하고도 색다르기 그지없다.

사실 여러 얼굴을 가져야 하는 배우들에게도 자신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과 배역이 있기 마련이다. 흔히 말하는 '연기변신' 이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아서, 본인 스타일의 배역이 아닌 경우 자칫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부자연스럽기 쉽다. 그만큼 극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과 수고를 필요로 하며, 심지어 많은 수고와 노력을 들인다 해도 재능과 경험이 받쳐주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그래서 전우치 속 강동원의 변신은 더욱 드라마틱하고 주목할만하다.

이에 더해 영민한 감독은 강동원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장면을 연출하였으니, 바로 전우치의 분신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이다. 각양각색의 표정과 포즈로 퐁퐁 튀어나온 수십 명의 전우치가 요괴에 맞서 화면 가득 서 있는 장면은, 배우 강동원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도전적인 장면인 동시에 그가 가진 비주얼을 극대화하는 환상적인 장면이다. 이에 대해 화면 밖 자막을 입힌다면, '오로지 강동원과 강동원, 그리고 또 강동원이기에 가능한 장면'이 되지 않을까.
4일 개봉한 '의형제'에서 강동원은 고뇌하는 캐릭터를 흔들리는 눈빛으로 표현해냈다. 송강호와의 연기호흡도 돋보였다. 사진제공 영화인
4일 개봉한 '의형제'에서 강동원은 고뇌하는 캐릭터를 흔들리는 눈빛으로 표현해냈다. 송강호와의 연기호흡도 돋보였다. 사진제공 영화인

흔들리는 눈빛, 고뇌하는 남자…'의형제' 속 강동원

반면 의형제 속 그는 이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작전 실패에 대한 누명을 쓰고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남파 공작원으로 6년간 도망 다녀야 했던 그의 이름은 송지원, 박기준, 그리고 또 조인준. 같은 인물이면서도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이 복잡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강동원의 성장은 충분히 평가 받을 만 하다. 푹 눌러쓴 모자 밑으로 도피자의 불안스러운 눈빛을 보일 때 그는 송지원이 되고,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전 국정원 직원 한규(송강호)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낄 때면 박기준이 되며,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리는 뒷모습에서는 조인준이 어른거린다.

남한과 북한, 충성과 배신, 명령과 우정, 그리고 잔인한 킬러로서의 삶과 가족을 그리는 아버지의 삶. 정확히 상반되는 여러 가치 속에서 고뇌하는 그의 눈빛은 깊다. 흡사 10여 년 전 정우성이 '비트'에서 보여주었던 흔들리는 눈빛을 닮기도 했고 최근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이 보여주었던 애절한 눈빛을 닮기도 하였다. 그리고 90년대 초반, 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용기 있는 일갈을 서슴지 않았던 서태지의 반항적인 눈빛도 어렴풋이 서려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사심으로 보일까.

그의 배우로서의 성장은 상대역인 송강호와 비교했을 때에도 잘 나타난다. 송강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다. 다수의 흥행작에 출연했던 것은 물론이고 칸의 레드카펫을 수도 없이 밟았으며 많은 감독들이 배우로서의 역량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주인공이다. 그러한 배우와의 투톱 출연은 시작부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고, 캐릭터에 대한 뚜렷한 해석이 없이는 주변 인물이나 소품적 존재로 하락할 위험도 크다.

하지만 강동원은 이런 송강호에 지지 않을 만큼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판이하게 다른 두 캐릭터의 밸런스를 교묘하게 맞추며 자신이 설 자리가 어디인지 지능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찾아내고 있다. 전우치에서와는 반대로, 직업이기 때문에 간첩을 쫓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때로는 능글맞은 송강호에 맞서 상충하는 가치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적인 킬러의 모습을 극의 두 중심축으로 뚜렷이 새겨 넣은 것이다.
연기도, 인생도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 강동원. 그의 '내일'이 궁금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연기도, 인생도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 강동원. 그의 '내일'이 궁금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의형제는 영리한 영화다.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여 웃음을 줄줄 안다. 이는 영화 속 두 주인공의 환상적인 연기호흡으로 더욱 탄력을 받는다. 시종일관 코믹한 말투와 과장된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한규는 가끔씩 진한 우정과 따뜻함으로 울림을 준다. 어둡고 진지한 표정의 지원은 때로 화장실 앞에서 막춤을 추거나 '특이사항: 닭백숙…' 이라는 어눌한 보고서로 웃음을 유발한다. 한 영화에서 만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상반된 이미지의 두 배우는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두 개의 세계를 창조해내면서도 서로의 영역을 이해하고 보완하며 결국엔 동질감을 끌어낸다. 그리고 강동원은 이 과정에서 분명, 대 선배인 송강호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했을 것이 틀림없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그의 다음 작품은 '카멜리아(동백꽃)'다. 이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작하는 프로젝트 영화로 일본의 유키사다 이사오, 태국의 위싯 사사나티엥, 그리고 한국의 장준환 감독이 '부산'과 '사랑'이라는 공통 주제를 가지고 만드는 옴니버스 영화이다. 감독들 모두가 각각의 독특한 작품세계로 인정받고 있는 기대주들인데다가 해외 영화계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어 칸 영화제 초청도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 "이제 무슨 일이든 결단을 내야 할 때"

어쩌면 이 작품이 언젠가 인터뷰를 통해 그가 계획했던 것처럼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작품'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인 흥행만을 목표로 기획된 상업영화가 아니라 작가주의 감독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란 점에서 색다른 경험이자 도전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올해 (드디어) 서른 살이 되었다. '6년 동안 도망만 다녔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든 결단을 내야죠'라고 말하는 의형제 속 대사에, 공교롭게도 이제 6년을 갓 넘긴 그의 필모그래피가 겹치는 것은 바로 그가 이러한 터닝 포인트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예인들사이에서도 돋보이는, '조각 미모'는 남자 배우에게 득이자 실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에 대해 조만간 '강동원이라 쓰고 배우라고 읽는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길. 스포츠동아 임진환 기자.
연예인들사이에서도 돋보이는, '조각 미모'는 남자 배우에게 득이자 실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에 대해 조만간 '강동원이라 쓰고 배우라고 읽는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길. 스포츠동아 임진환 기자.

그는 외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른 또래 배우들처럼 예능이나 토크쇼에 출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지도는 높지만 대중과의 친밀도는 떨어진다. 소위 돈이 된다는 CF 에도 자주 출연하지 않고,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 역시 적극적이지 않다. 때문에 까다롭다거나 건방지다는 평가도 종종 듣는다. 그를 볼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스크린 속이다. 마치 연기로 모든 것을 대변하겠다는 결심을 증명하듯, 그는 치열하게 연기하는 모습 이외에 다른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스타로서는 위험한 도박이지만, 동시에 그런 외골수적인 배짱이 이토록 그를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른 후 언젠가 그에 대해 다시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그 때는 '강동원이라 쓰고 배우라고 읽는다' 는 조금은 낯간지러운 제목을, 주저 없이 붙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주현 janice.jh.ch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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