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구가인] 루저스피릿① “좋아서 하는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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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0일 12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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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밴드와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좋아밴'은 2009년 '헬로루키' 인기상을 수상했다
'좋아밴'은 2009년 '헬로루키' 인기상을 수상했다


이름에 먼저 낚였다. 밴드 이름이 '좋아서 하는 밴드'라니 어쩐지 재밌는 노래만 부르는 '좋은' 아이들 같다고나 할까.

지난 2년 간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좋아서 하는 밴드'(이하 좋아밴)은 젬베를 비롯한 타악기를 치는 조준호(26)와 베이스의 황수정(26), 미모의 베이시스트를 영입하기 위해 베이스 대신 기타를 치게 된 손현(28), 피아노 대신 아코디언을 선택한 막내 안복진(23)으로 이뤄진 4인조 밴드다.

좋아밴은 요즘 이래저래 주목받고 있다. 얼마 전 인디밴드라면 누구나 꿈꾸는 '헬로 루키'로 꼽혔을 뿐 아니라, 연말결선에서는 인기상(2008년엔 장기하와 얼굴들이 수상했다!)을 탔고, 조만간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 '좋아서 만든 영화'가 개봉한다.

▶EBS '헬로루키' 올해의 인기상 수상팀

- '좋아서하는 밴드'란 이름은 누가 지었어?

"언젠가 공연을 하다가 누군가 '밴드 이름이 뭐냐'고 물었어. 그때 별다른 이름이 없어서 '저희는 그냥 좋아서 하는 밴든데요'라고 대답했는데 '좋은 이름이네요' 하시더라고. 결국 그게 이름이 됐어. 괜찮은 이름 같지 않아?"

- 응, 근데… 정말 좋아서 해? 좋아서 한다는 건 뭘 말하는 거야?

"지금 내가 해야 할 수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그게 좋아서 하는 일 아닐까. 최소한 우린 지금까지 좋아서 하는 일을 했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면, 밴드 이름을 바꿔야겠지.

이름 없이 활동하던 밴드는 "그냥 좋아서 하는 밴드"라고 말한게 그대로 이름이 됐다.
이름 없이 활동하던 밴드는 "그냥 좋아서 하는 밴드"라고 말한게 그대로 이름이 됐다.


- 너흰 어떻게 만났어?

"솔직히 말하면… 우린 좀 생각 없이 만들어진 밴드야. 준호가 어쿠스틱 브라더스라는 팀으로 대학가요제에서 상도 타고 했는데 팀이 해체됐거든. 그런데 행사는 들어오고 용돈벌이를 놓치긴 아까워서, 같은 과 친구인 손현과 대학가요제에서 알게 된 복진을 급히 영입한 거지. 그게 밴드의 시작이야. 그렇게 셋이 거리공연을 하다가 지난해 6월에 수정이가 합류하게 됐어. 넷이 버스킹을 한 지 1년 반 정도 됐네."

- 버스킹?

"버스킹은 거리서 하는 공연이야. 우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 거리에 나가서 우리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 해. 서울에선 홍대와 대학로에서 하고, 지난해엔 거리공연해서 번 돈으로 중고차를 사서 전국투어도 했어. 강원도와 제주도 빼곤 거의 다 가봤을 걸. 처음엔 무작정 축제를 찾아 가서 묻지도 않고 공연을 했는데, 이젠 초청을 더 많이 받아. 그런 식으로 200번 정도 거리공연을 한 거 같아."

- 그러니까 너흰 길 위가 무대구나. 그런데, 길에서 공연을 하는 건 좀 힘들지 않아?

"가끔 힘들 때가 있긴 해. 때로 주변 상가들의 적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이젠 우리가 알아서 눈치를 보고 잘 대처하지. '여기에서 하면 괜찮겠다'는 감도 생겼고,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방법도 터득했고…. 이젠 쫓겨날 것을 미리 걱정하진 않아. 항의가 들어오면 자리를 옮기면 되니까."

- 그런데, 왜 계속 길 위를 고집하는 거야? 홍대 클럽 같은데 설 수 있지 않을까.

"(발끈!) 뭔가 오해하고 있는데 우린 홍대 클럽에 설 수 없어서 거리로 나간 게 아니야. 홍대 클럽은 우리를 아는 사람들만 모이겠지만 거리에서는 우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 우리는 음악으로 그 사람들을 붙잡아야해. 더 난이도 높은 도전이라는 거지."

▶거리공연 '버스킹'만 200회

언젠가 싫으면 음악을 관두겠지만 지금은 그냥 음악이 좋단다
언젠가 싫으면 음악을 관두겠지만 지금은 그냥 음악이 좋단다


좋아밴은 "음악만 하고 싶었다면 버스킹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음악을 매개로 길에서 친구가 되는 경험은 버스킹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버스킹은 좋아밴의 생계수단이자 여타 인디밴드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전략이기도 하다. '난이도 높은' 거리공연에서 관중을 모으기 위해서는 연주실력 못지않게 소통의 기술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들은 공연 중 멘트나 표정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다. 매 거리공연에서 "음악만 하면서도 먹고 살수 있다는 걸 증명하게 도와달라"고 외치고, 실제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거리 공연하면서 우리가 배운 건 최악의 무대는 없다는 거야. 관중 호응이 없다면, 우리 공연을 보고 돈을 안냈다면 그건 우리가 별로이기 때문이야. 우리는 거리공연으로 먹고 살수 있도록 그만큼의 노력을 해."

- 너희 음악의 특징은 뭐야? 사람들이 너희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글쎄, 공감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 경험을 바탕으로 가사를 쓰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될 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거든. 여기에 마이크나 스피커 같은 장비 없이 길 위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니까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는 것 같아.

좋아밴은 팬들이 키우는, 이른바 '부양밴드'이기도 하다. 지난 4월 나온 첫 싱글 앨범은 팬들의 700장 선주문 덕에 제작할 수 있었다. "거리에서 만나 친구가 된" 팬들은 좋아밴의 홍보는 물론 행사 섭외도 해준다. 감사의 표시로 첫 싱글 앨범이 나왔을 때는 서울에 사는 팬들에 한해 멤버들이 직접 팬들을 찾아가 앨범 전달식을 했다.

좋아밴은 팬들이 소중하게 키워 가꾸는 '부양밴드'이디고 하다.
좋아밴은 팬들이 소중하게 키워 가꾸는 '부양밴드'이디고 하다.


- 앨범은 많이 팔려?


"아까 공연 끝난 후에 우리 앨범을 사기 위해 길게 줄 선거 봤지? 앨범은 주로 공연에서 많이 팔려. 한 번 공연하고, 많을 땐 백 장 넘게 팔 때도 있어. 우리 앨범은 일종의 기념품 같은 거야. 요즘엔 어차피 CD 보다는 mp3나 그냥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듣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시중에서 판매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물론 공연 때 못 사고 집에서 후회하는 분들을 위해 인터넷 주문은 가능해."

- 근데, 돈은 충분히 버는 거야?

"충분히? 충분한 게 어느 정도지? 한 10억 이상 벌면 충분한건가? 돈을 충분히 번다고 할 순 없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 우린 우리 학비를 스스로 낼만큼, 사고 싶은 악기를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어."

- 불안하진 않아? 남들처럼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불안한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직장을 가졌다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야. 내 친구들이 토익을 치르고 취업을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도 나름의 노력을 해. 미래는 불확실한 거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팬을 만들어가고, 힘을 비축하는 거지. 다들 왜 음악을 하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우린 밥을 벌기 위해 음악을 하지, 밥을 굶으면서 음악을 할 생각은 없어. 그리고 언젠가 음악이 싫으면 관둘 거야. 다만, 현재 가장 행복한 거… 그걸 쫓는 거지."

▶"좋아서 하는 건데, 계획이나 목표는 묻지 마"

- 앞으로 꿈은 뭐야? 미래의 목표? 계획이랄까….

"글쎄, 이거 뭐 무릎팍도 아니고… 사실 우리가 인터뷰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에 대한 거야. 글쎄 내게 계획을 묻는다면, 내일까지 팀플 과제를 내야하는 거 정도? 많은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장기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맞는 단기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걸 하나씩 이뤄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 뭐 그렇게 얘기하지만 난 헛소리라고 봐. 장기 목표가 생기는 순간, 목표의 노예가 되는 거야. 거기에 인생 같은 건 있을 수 없잖아. 장기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당장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은 너무 많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일들도 많아. 그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들을 골라서 최선을 다해 한다면 그게 진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이 아닐까?"

거리에서 하는 공연 '버스킹'을 통해 내공을 쌓고 생존력을 갖췄다
거리에서 하는 공연 '버스킹'을 통해 내공을 쌓고 생존력을 갖췄다


-성공을 위해서 계획을 짜기도 하지만,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계획을 짜기도 하잖아. 너흰 자신감이 넘치는 거 같아.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거지?


"거리에서 1년 반 동안 버틴 뚝심이랄까. 사실 실패는 누구나 하지. 그런데 잘 생각해봐. 뭔가를 하려다 실패했을 때 어떤 경우에 그게 문제가 되고 어떨 때 별 일 아니게 되는지. 간단해, 큰 것을 욕심 부리고 그 일이 실패 했을 때 힘들어 지는 거고 작고 소소한 일들이라면 그 실패는 그냥 에피소드가 되는 거야. 우리는 큰 욕심 부린 게 없으니까 이렇다 할 실패도 없어. 거리 공연하러 나간 자리에 다른 팀이 공연하고 있으면 실팬가? 그냥 다른데서 하면 되잖아. 언젠가 누가 우리를 보면서 '역시 되는 밴드는 뭘 해도 된다. 비도 피해가는 밴드!'라고 한 적이 있어. 근데, 비가 오는 날 비 안 맞고 거리 공연하는 방법이 뭔지 알아? 바로 비가 그칠 때 까지 기다리면 돼. 작은 생각의 차이야. 우린 많은 경험을 했을 뿐 실패한 적은 없다, 랄까?

- 좋아서 하는 밴드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은 뭐야?

"적자! 지방에 내려가면 꼭 그 지방에 맛 집에 가는데 그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거든. 그러면 우리는 그 비용을 버스킹으로 메우곤 해. 우리 사전에 적자는 없으니까. 그래서 우린 맛없는 음식을 매우 비싼 값에 먹는 걸 무척 싫어하지."

- 너희의 음악이 점차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잖아. 그러면 좋아서 하는 일보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좋아서 하는 일을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 어쩔 수 없는 일들도 좋아하려고 노력해야겠지. 사실 우리도 요즘 조금씩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해. 최대한 모든 멤버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많이 의논하려고 하고. 우리가 좋아서 하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좋아서 하는 밴드가 아니잖아."

좋아밴은 자신들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어 간다
좋아밴은 자신들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어 간다


- 소속사를 구할 생각은 없어? 한결 편할 텐데….

"글쎄 아직은. 지금 상태에서는 소속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 스스로 키운 밴드가 조금씩 커져가는 걸 보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거든.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것 같아. 그래서 한번 갈 수 있는데 까지 가보고 싶어. 물론 이러다 힘들어 지치게 되면 회사에 들어가겠지."

날이 추워진 후부터 좋아밴은 거리공연 대신 새 앨범 녹음을 시작했다. 여기에, 좋아서 만든 영화가 나온 요즘은 시사회장에 찾아가 공연을 하느라 더 바빠졌다. 때문에 인터뷰는 미루고 미뤄져, 늦은 밤 진행됐다. 반복된 인터뷰에 네 명의 멤버가 조금은 지쳐보였다고 할까. 아니면 인터뷰를 하는 기자가 먼저 지쳤기 때문인 걸까. 좋아서 섭외를 하긴 했는데 이걸 좋아서 하는 인터뷰라고 할 수 있으런지…. 그런데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뭐지? 이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가장 필요한 건, 열정. 그리고 돈? 돈은 생활을 할 만큼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수정)

"자신을 믿는 마음. 남들이 생각하기엔 자만이지만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행복하기는 힘들 거 같아." (복진)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건 뭘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다른 사람은 싫어하진 않을까, 또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이 누군가에겐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고민."(손현)

"끊임없는 노력이야.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그 원인들을 없애야 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늘 되물어야 하니까."(준호)

동아일보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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