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장나라 아버지 주호성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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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6일 14시 45분


코멘트
"대기업 질서 거부한 장나라 폄훼, 도 넘었다"
"기부문화 선도…, 지금에 와선 후회도 된다"


인터뷰 중인 장나라 아버지 주호성 대표. 촬영·정호재 기자
인터뷰 중인 장나라 아버지 주호성 대표. 촬영·정호재 기자

"이 글은 장나라의 실패를 전제로 깔고 쓴 기사입니다. 나라가 어떻게 실패했다는 건가요? 또한 나와 딸인 나라의 결별이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오해와 편견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주호성)

<O2 창간호>가 공개된 10월 30일, '+86'이라는 중국 발신번호가 찍힌 전화 한통이 기자에게 걸려왔다. 중국 광시성(廣西省) 우저우(梧州)에서 열린 '보석제 콘서트'에 운집한 5만 관중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장나라의 아버지 주호성 씨(59)였다. 연극배우 출신인 그가 딸인 장나라의 연예계 데뷔(2001년) 이후 총괄 매니징을 맡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중국에서 잘나가는 장나라에 대한 아쉬움>이란 칼럼에 분노한 이유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었다. 10월 21일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가 공개된 직후 납득하기 힘든 비난이 장나라에게 집중됐다. 이른바 '1000만 <해운대>의 하지원이 탈락하고 개봉도 안한 <하늘과 바다> 장나라가 여우주연상 후보가 됐다'는 '2009년판 대종상 파문'이 바로 그것이다.

주호성 씨는 이를 '명백한 음해'라고 규정하고 강력 대응을 선언했다. 개봉하지 않은 영화라도 영화제에 출품해 상을 타는 것은 '일상다반사'인데 일부 대기업 논리에 휘말린 영화기자들이 의도적으로 '장나라 죽이기'에 나섰다는 것. 결국 이 칼럼 역시도 그 연장선이 아니냐는 반론이었다.

영화 ‘’하늘과 바다’는 대기업의 횡포로 흥행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영화 ‘’하늘과 바다’는 대기업의 횡포로 흥행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도대체 장나라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주호성 씨가 한국으로 복귀한 다음날인 11월1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2시간 정도 인터뷰를 가졌다. 정확한 분위기는 인터뷰라기보다는 주호성 씨의 매서운 질책과 절박한 항변에 가까웠다.

"무슨 반론 기사를 써달라거나 담당기자로부터 사과를 받기 위해 보자고 한 건 아닙니다."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10년 훨씬 넘게 자신이 후학들 연기지도를 위해 사용했다는 오래된 여의도 오피스텔은 10월28일 개봉한 <하늘과 바다> 포스터로 가득 차 있었다. 포스터 속의 장나라는 밝게 웃고 있었지만 사무실 공기는 가볍지 않았다. 영화의 흥행 성적이 시원치 않기 때문. 정확히 말해 참패에 가까웠다.

그는 "제가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로비할 능력도 없고, 실제로 돈이 없어 영화 포스터 한 장을 더 못 붙이는 상황에서 세상 인심이 너무하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도대체 누가 하지원 씨를 밀어냈다는 겁니까? 대종상 여우주연상 후보가 5명인데 왜 하필 장나라가 밀어낸 게 됐나요? 관객의 심판이 중요하다고요? 영화제가 흥행 성적에 좌우된다면 무엇 때문에 심사위원이 존재합니까? 심사기간 중이라 아무 말도 못하는 우리만 바보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세간에 나도는 기묘한 폄훼 기류에 대해 연극배우 특유의 정확한 발성으로 차근차근 반론을 펼쳐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딸에 대한 애정과 중국에서의 성공에 대한 자부심이 실려 있었다.

- 대종상 논란이 초점이 아닌 장나라의 더 큰 발전을 위한 고언이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칼럼대로 아버지와 결별하고 대형 기획사로 돌아가면 장나라가 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절대로 수긍 못하겠습니다. 나라도 한때 대기업(SM) 소속이었습니다. 그 곳과 결별하고 오히려 더 크게 성공한 셈입니다. 나라만큼 중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이 어디 있습니까? 제발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대형 기획사들 수십억 들여 중국에 진출했지만 도대체 누구를 스타로 키워내고 인간적인 대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장나라는 한류스타 가운데 고향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스타로 분류된다. 2002년 한국에서 스타로 떠오를 때와는 크게 달라진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인기 있다는 수많은 한류스타 가운데 그녀만이 직접 중국 인민과 스킨쉽을 하고 중국 연예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실력을 인정받은 대형 스타로 발돋움했다.

2005년부터 중화권 전역에 방영 중인 <댜오만 공주>가 바로 그녀의 대표작이다. 33부작 전편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그녀의 귀엽고 똘망똘망한 연기는 중국인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켜 첫 방송을 탄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 곳곳에서 재방 3방 4방째 이어지는 작품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가수 출신인 장나라의 콘서트는 중국 어디서나 만원 관중을 기록한다. 때문에 중국에 진출을 모색하는 그 누구라도 장나라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하고 실제 큰 도움을 얻었다.

장나라가 출연한 영화 ‘하늘과 바다’의  한 장면.
장나라가 출연한 영화 ‘하늘과 바다’의 한 장면.


"나라만큼 중국에서 성공한 한류스타는 없습니다"

- 중국에서 장나라의 성공은 대부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당신네가 쓴 칼럼에 장나라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주제가 코러스 참여'라고 씌여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가장 자랑하는 올림픽, 그리고 그 주제가 '베이징환잉닌'에 100명의 중화권 최고 스타들이 참여했습니다. 이 가운데 단 한명의 외국인이 바로 장나라였습니다. 정확하게 말해 '코러스 참여'로 폄하될 것이 아닌, 주제가 일부분을 부른 '일대 사건'인 겁니다. 그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가 단 한명의 외국인을 초대했는데, 국내에서는 아무도 그 성과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 6년만에 국내 복귀작으로 들고온 <하늘과 바다>에 대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까? 실제 흥행도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았고요….

"흥행이요? 영화 대기업들의 '퐁당퐁당' 상영에 된통 당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관객이 시간을 맞춰야 합니다. 극장에서 1회 아니면 2회 상영을 하는데 어떻게 흥행을 기대합니까. 이런 게 대기업들의 횡포가 아니면 무엇인가요?"

그는 이 대목에서 분노가 폭발했다. '퐁당퐁당'이란 한 상영관에서 오전부터 밤까지 고정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는 영화를 황금시간에 배치하고 나머지 시간에 해당 영화를 편법 교차상영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 이 영화는 전국 198개 극장에 배급이 됐지만 거의 대부분 극장에서 하루 1~2회 상영이 고작이다. 개봉한지 일주일 관객이 수만 명 내외라는 것도 바로 그 이유가 크다.

물론 영화 자체의 약점도 흥행 찬물에 한 몫 거들었다. 그 약점이란 최근 대세인 자극적 소재의 대작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비 20억 원이란, 이 돈의 대부분을 조달한 주호성씨에게는 큰 돈이지만 최근 제작되는 드라마 한편 값에도 못 미치는 독립영화 규모에 불과하다. 제작비와 홍보비가 절대 부족하니 영화가 미장센이 나올 리 없고, 장나라의 혼 신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영화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열기엔 역부족인 상황.

한 영화주간지에 평론가 하재봉은 "시대착오적인 동화풍 이야기, 설마 한국 관객들을 겨냥해 만든 것 아니겠지?"라며 중화권 시장에 눈높이를 낮춰 맞춰 만든 영화라고 단정적 평가를 내렸다. 능력은 있는데 고의로 한국 눈높이가 아닌 중국 시장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시각인 것.

- 칼럼 작성 계기도 장나라가 보다 트렌디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할 수도 있는데, 아버지가 돈을 대고 통제한 영화에만 나오는 것이 문제라는 시각이었습니다.


"트렌디한 작품이요? 대작이요? 세상에 그런 것 하기 싫어하는 배우도 있답니까? 영화사들은 나라가 중국에만 나가 있어 한국에서는 티켓 파워가 없다고 단정합디다. 우리가 중국에서 CF를 해서 돈이 많다고요? 이게 지금 우리를 보는 질시의 눈길입니다. 내부적 사정은 전혀 다릅니다."

주호성 씨 말하는 <하늘과 바다> 제작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4년간 중국 일에 매달렸지만 한국 일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제작을 계약했던 허술한 파트너들 때문에 중도에 판판이 깨져나갔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계약한 이 영화마저 투자가 제대로 안돼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결국 주호성 씨가 급하게 3억을 만들고 와서야 영화가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 문제는 이렇게 하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제작 쪽에서는 오히려 잔금 안준다고 비난을 했다는 것. 최악의 상황에 제작비 쪼들리며 영화를 찍었으니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리가 없었던 것.

장나라와 함께한 주호성. 동아일보 DB
장나라와 함께한 주호성. 동아일보 DB


"국가로부터 단 한 푼 받지 않았지만 국위 선양엔 힘썼습니다"

- 장나라 이름이 있는데 왜 펀딩이 안될까요.

"휴~. 우리가 쎈 것 같지만 허울 좋은 이름뿐입니다. 실제 제작비가 부족하자 지식경제부 산하 수출보험공사 융자를 떠올렸습니다. 그간 우리는 외교부 행정자치부 교육부 문화관광부 등 갖가지 공식 행사에 불려다니며 국위선양 목적으로 협조해온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지금은 UN사무총장이 되신 분도 감사장 한 장 주면서 장나라를 요긴하게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국가 돈 단 한 푼도 빌릴 수 없었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 모르겠습니다.

"중국 수출계약서를 비롯한 각종 계획서를 갖고 찾아갔지만 자동차 리스료 연체 기록이 있다고 융자를 해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현재 연체가 아닌 연체 기록이 있다는 것만으로 국가기관이 단 한 푼도 해줄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다면 한류스타와 일반인이 다를 게 무엇인가요? 결국 은행 대출로 겨우 여기까지 왔고 지금은 포스터 붙일 돈도 부족한 형편입니다. 나라는 중국 수해지역에 먼저 찾아가서 기부 활동 펼치며 국위 선양하고 다녔는데, 제가 그 순간에 남에게 자선했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 중국인들이 6년만의 장나라표 영화를 기대할 텐데요…

"당연합니다. 전 지금도 <하늘과 바다>가 훌륭한 작품이고, 앞으로 유명한 작품일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25억 인구가 다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15억 동남아 10억 인구가 이번 영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겨우 10원을 내고 불법 DVD를 본다고요? 그래도 내일이면 100원 주고 음반을 살테고 모레는 1000원 주고 영화에 나온 냉장고와 휴대전화를 살 것 아닙니까? 한류가 바로 그런 의미 아닌가요?"

주호성 씨는 장시간에 걸쳐 한류에 대해 단기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정부와 대형 기획사들을 질타했다. 결국 장나라가 더 큰 한류스타로 크지 못하는 것은 대기업 질서에 편입되지 않고 독자 활동을 벌이는 자신에 대한 공격이고, 이 또한 우리에게 만연한 대기업의 정서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한류스타?

- 그렇다면 장나라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계속 이 상태로 가는 겁니까?

"체계적으로 한류를 키울 수 있는 회사가 어디 있나요? 주가조작, 노예계약, 성희롱이 만연하는 회사에서 장나라가 한류스타로 정상적으로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우리도 SM 아래서 동방신기 13년 노예계약을 겪어 봤습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쉽게 말해선 안 됩니다. 물론 모든 비난이 내게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영화 혼자 투자해 말아먹었다고 하고 심지어 '서커스 단장'이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내 역할도 나라가 세상에 대한 대처능력이 있을 때까지입니다. 실제 '북경나라문화'나 '나라짱닷컴'의 주인도 결국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난 법적인 책임자일 뿐. 대신 장나라 옆에 내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나라는 제 품안에서 자유롭습니다. 연애도 가능하고 술도 자유롭게 먹고… 20대 여자애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클 수 있었습니다."

대화 도중 담배를 피워 물은 주호성 씨는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실제 그는 1인극의 대가가 아니던가. 6년 만에 출연한 영화가 흥행에서 참패하고 게다가 근거 없는 음해까지 받았으니 그의 속이 편할 리 없었다. 게다가 투자한 돈의 상당수가 빚이 되는 구조가 아니던가.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한류스타라? 인터뷰가 끝나고 이틀 뒤 <하늘과 바다>가 상영하는 서울 군자역 CGV를 찾았다(칼럼니스트는 영화를 보고 칼럼을 썼지만 담당기자는 이 기사를 위해 뒤늦게 영화를 관람했다).

그의 말대로 서울 시내에서 정상적인 시간에 이 영화를 관람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퐁당퐁당 상영의 폐해다. 결국 극장이 밀집한 종로나 중구가 아닌 회사에서 지하철로 30분이나 떨어진 지역까지 발걸음을 옮긴 것. 오후 5시에 시작하는 영화시간에 10분이 늦었다.

매표원에게 늦게라도 들어갈 수 있겠냐고 묻자 조금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매자가 한 명도 없어서 상영이 취소됐어요."

결국 저녁 7시까지 기다려 단 수명의 관객과 함께 조금은 호사스럽게 관람할 수 있었다. 주호성 씨의 말대로 장나라의 연기는 무르익었고 대종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호연이었다. 옆 좌석의 10대 소녀는 주인공이 고난 속에서도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펼칠 때 탄성을 지르며 영화에 빠져들었다.

문제는 영화 속에서의 주인공 '하늘'이 죽은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완벽하게 독립하지 못한 천사같은 소녀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 기자에게 그 모습은 현실 속 장나라의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안에 그녀에 대한 편견이 너무 깊게 쌓인 것일까. 혹은 장나라와 그 아버지가 우리에게서 너무 멀어진 것일까.

중국인 대부분이 좋아하는 최고의 한류배우 장나라. 머지않은 30대 이후 그녀가 어떠한 연기 이력을 쌓아가게 될지 궁금증이 더욱 커져 버렸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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