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진영 아름다운 미소로 세상과 작별

  • 입력 2009년 9월 2일 02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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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투병 중이던 톱스타 장진영 씨가 1일 서른일곱 짧은 생을 마감했다.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장 씨는 이날 오후 4시 5분경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 성모병원에서 가족과 소속사 관계자, 그리고 연인 김 모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인은 신부전을 동반한 호흡부전이다.

장진영 씨는 지난달 31일 병원에 입원할 당시부터 호흡 곤란과 저혈압 증상을 보였다. 1일에는 모르핀 주사를 맞으며 담담하게 생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소속사인 예당엔터테인먼트는 "장진영 씨가 팬들에게 끝까지 사랑해줘서 고맙고, 오래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여배우로서 품위를 잃지 않았다.편안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고 전했다.

숨을 거두기 직전 천주교 신부님과 수녀님이 마지막으로 선종 기도를 올렸고, 부모님과 친구, 소속사 관계자들이 임종을 지켰다. 고인은 의연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는 지난해 9월 건강검진을 받던 중 위암 발병 사실을 알게 돼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당시 언론에는 위암 초기 단계 정도라고 보도됐으나 사실은 위암 3기 정도의 심각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항암 치료와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과 뜸 치료를 함께 받으면서 한때 상태가 호전되는 듯했다. 올해 5월에는 가수 김건모의 콘서트를 지인들과 함께 관람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7월에는 사업가 김 모 씨와 1년째 열애 중인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상태가 나빠져 다시 입원했으며, 암세포가 몸 전체로 전이돼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소속사는 "지난달에 이미 모든 치료를 중단했으며 가족과 함께 마지막을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1972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장진영 씨는 상명대 의상학과 재학 중이던 1992년 미스코리아 충남 진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CF 모델로 활동하던 그는 1997년 드라마 '내 안의 천사'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으며, '남자 셋 여자 셋', '마음이 고와야지', '순풍산부인과', '싱싱 손자병법' 등의 드라마에 잇따라 출연했다.

하지만, 고인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스크린에서다. 1999년 첫 영화 '자귀모'를 시작으로 '반칙왕'(2000)에 출연한 그는 2001년 '소름'에서 매 맞는 아내 역할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치며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국화꽃 향기'(2003), '싱글즈'(2003)를 거치며 명실상부한 스크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특히 '국화꽃 향기'에서는 본인의 실제 삶처럼 위암 말기 환자 역을 맡았다.

2005년에는 100억 원에 가까운 제작비를 들인 영화 '청연'에서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의 생애를 연기했다. 2년 가까이 미국, 중국을 오가며 '청연'에 매진하는 열정을 보였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에서는 술집 작부의 밑바닥 인생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

그는 '소름'과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거머쥐었다.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2003),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2006),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2006),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2006) 등 상복도 많았다. 국외에서는 2001년 '소름'으로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스페인 시체스 공포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07년 10월 SBS 드라마 '로비스트'를 통해 오랜만에 TV로 복귀했지만, 이것이 장 씨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장 씨의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4일 오전 9시다. 고인의 시신은 경기도 성남장례식장에서 화장될 예정이다.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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