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릇한 제목은 ‘뻥튀기’ 풍성한 볼거리 즐겨라

  • 입력 2009년 3월 31일 02시 54분


내달 16일 개봉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제목부터 살펴보자. 4월 16일 개봉하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원제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다.

미국 여성 비키(레베카 홀)와 크리스티나(스칼릿 조핸슨)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특별한 휴가 이야기. 이 영화의 홍보대행사인 하늘의 최경미 과장은 “원제로는 내용을 짐작할 수 없어서 한글 제목을 바꿨다”고 했다.

크리스티나가 새 애인 후안(하비에르 바르뎀)의 이혼한 아내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스)까지 사랑하게 되는 설정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이긴 하다. 하지만 제목까지 야릇한 분위기로 바꿔버릴 만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얘깃거리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바르셀로나 친척 집에서 여름을 보내기로 한 비키와 크리스티나. 비키는 카탈루냐의 가우디 건축물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고 있는 이지적인 여성, 크리스티나는 단편 영화를 만드는 격정적인 여인이다. 어느 날 저녁 이들 앞에 나타난 화가 후안이 “1시간 뒤 비행기를 타고 섬으로 떠나서 주말을 함께 보내자”고 제안한다.

“구경하고 먹고 마시고… 사랑도 나누고요.”

“정확히 누구와 사랑을 나눈다는 얘기냐”고 따져 묻는 비키에게 후안은 “짧고 따분하고 괴로운 인생인데 뭘 망설이냐. 내 바람은 셋이서 다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첫 머리부터 파격적으로 들어간 까닭에 영화 중반 마리아의 등장부터 그려지는 ‘한 남자 두 여자의 동거’에는 자극적인 느낌이 없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하나의 중심 캐릭터가 아니라 복잡하게 얽혔다 풀리는 남녀간의 ‘관계’. 우디 앨런 감독은 내레이션 배우를 통해 끊임없이 수다를 떨면서도 영화의 흐름을 산만하지 않게 이어낸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는 크리스티나, 후안, 마리아 등 세 동거인의 얼굴만 보인다. 하지만 관객이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포스터 밖 비키의 이야기다. 능력은 있지만 성격이 따분한 미국인 남자와 결혼한 비키는 시간이 갈수록 후안의 야성적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상식을 벗어나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세 사람 사이에 슬쩍 한몫 끼려다가 큰코다치는 비키. 비키의 시선은 바르셀로나를 사랑하는 ‘이방인’ 앨런 감독의 시선이자 관객의 시선이다.


제작 초기 ‘앨런 감독의 스페인 프로젝트’로 불렸던 이 영화에서 가우디의 건축물은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사 그라다 파밀리아 교회, 구엘 공원 등의 걸작이 스쳐 지나는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가슴 깊이 감춘 비키와 후안은 구엘 공원 입구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동화 속 세상처럼 형형색색의 조형물과 타일로 가득한 이곳은 어렵게 만난 남녀가 진심을 고백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영화 후반 친척 아주머니가 비키에게 점잖은 충고를 건넬 때, 그것이 복잡하게 얽힌 연애담을 정리하는 주제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삐딱한 74세 노익장 앨런 감독은 결말에서 관객의 기대를 유쾌하게 배반한다.

의도가 미심쩍은 번안 제목에 대한 기대나 오해를 없애고 극장에 들어가는 편이 풍성하게 차려진 볼거리를 즐기는 데 유리하다.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크루스가 목욕 타월만 두른 채 “세상에 나만 한 여자가 어디 있냐”고 고함치는 모습도 볼 만하다. 15세 이상 관람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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