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섹시하게… 어색하고… 웬 소심남?

  • 입력 2008년 6월 24일 03시 01분


■우위썬 감독 ‘적벽대전’ 내달 개봉… 배우와 배역 궁합 맞았나

우위썬(吳宇森) 감독이 량차오웨이(梁朝偉)와 진청우(金城武)를 주유와 제갈량 투 톱으로 내세워 만든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7월 10일 개봉).

이들의 팬이자 삼국지 마니아라고 할 만한 사람이라면 찾아볼 만한 작품이다. ‘스타워즈’ 팬이 완성도와 상관없이 프리퀄(prequel·시기적으로 앞선 얘기를 다루는 속편) 시리즈를 챙겨본 것과 같다.

본보 영화팀은 평론가 정지욱 씨와 함께 이 영화의 등장인물을 집중 분석했다.

‘적벽대전’은 아시아 최대의 블록버스터로 기대를 모으며 출발했지만 배역을 정하는 데 적잖은 난항을 겪었다. 진청우의 제갈량은 원래 량차오웨이 몫이었다. 량차오웨이는 제작기간 등 여러 이유로 중도하차했다가 저우룬파(周潤發)가 주유 역을 고사하자 대타로 다시 나섰다. ‘패왕별희’(1993년)의 징쥐(京劇) 속 항우 장펑이(張풍毅)가 연기한 조조 역에 감독이 원래 점찍었던 배우는 일본의 와타나베 겐(渡邊謙)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캐스팅. 결과는 어떨까. 5개 항목을 정해 100점 만점으로 채점했다. 코에이코리아의 협조로 인기 컴퓨터게임 ‘삼국지11’의 인물분석 그래픽을 활용했다.

① 주유: 량차오웨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저우룬파의 여운이 아쉽다. 중국 강남 지방에 우뚝 서 있는 주유의 석상은 늘씬한 장신의 쾌걸. 나관중의 소설에 묘사된 주유도 능력 못지않게 풍채가 돋보이는 미남자였다. ‘소시민의 자상한 연인’ 량차오웨이가 입기에는 처음부터 사이즈가 큰 옷이었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량차오웨이는 중국 양쯔 강 이남 지방의 30대 꽃미남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뛰어난 연기력으로 겨우 보완했다.

② 제갈량: 진청우

냉정하게 묘사되는 원작과 달리 영화 ‘적벽대전’의 제갈량은 위기 상황에서 자주 두려워하고 당황한다. 하지만 진청우의 날카로운 턱 선과 콧날은 예리한 천재 제갈량에 잘 어울린다.

특히 주유와 함께 현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에서는 1990년대 중반 왕자웨이(王家衛)의 ‘중경삼림’이나 ‘타락천사’에서 보여줬던 섹시함을 재현한다. 이 장면에서 주유의 부인 소교의 시선은 야릇하게 제갈량을 향한다. 마주 앉은 왜소한 량차오웨이가 퉁기는 것은 악기가 아닌 주판알 같아 보인다.

③ 조조: 장펑이

항우가 나이 든다고 조조가 될 수는 없다. 익히 알려진 조조의 이미지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 장펑이는 부리부리한 눈을 애써 가늘게 하며 야비한 표정을 지어보지만 아무래도 어색하다.

군사의 수적 우세만 믿고 유비와 손권을 몰아세우는 모습은 원작 소설에서의 신중한 모습과 다르다. 하지만 장판 싸움에서 활약하는 조운을 보며 감탄하는 장면 등은 거의 비슷하게 재현됐다.

④ 손권: 장전(張震)

‘와호장룡’(2000년)의 철부지 마적단 두목 ‘호’가 세수를 하고 금관을 쓴 모습. ‘수성(守成)의 명군’으로 이름난 손권은 아무리 심한 말에도 포커페이스로 일관하는 자제력이 유명했다. 영화 속 손권은 남의 말에 일일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못난 남자다.

보다 못한 주유의 담력 훈련을 소화하고 조조와의 싸움을 어렵게 결심하는 손권. 원작에서 멋진 장면으로 손꼽히는 ‘결전의 탁자 베기’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소심하게 살짝 베어내진 모서리가 보기 안쓰럽다.

슈퍼모델 린즈링(林志玲)은 소교 역으로 영화에 데뷔했다. 하지만 옛 복색을 입은 린즈링은 ‘설날 특집 외국인 장기자랑’에 나온 한복 입은 금발 미녀를 연상시킨다. 주유와의 베드신에서 슈퍼모델다운 각선미만 돋보일 뿐이다.

12월 개봉할 2부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인물은 조운 역의 후쥔(胡軍)과 손권 누이동생 손상향 역의 자오웨이(趙薇). 이들의 연기가 예상외로 돋보였기 때문. 후쥔은 ‘삼국지: 용의 부활’(4월 개봉)에서 조운 역을 맡았던 류더화(劉德華)에 뒤지지 않는 싸움 실력을 이 영화에서 보여주었다. 원작과 달리 부상도 당해 소설보다 더 진한 공감을 전해주었다. ‘적벽대전’ 후반부 전투에서 맹활약한 자오웨이는 유비와의 로맨스로 2부에서 그 비중이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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