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송년특집/논란의 재구성]디워 논쟁

  • 입력 2007년 12월 16일 16시 04분


흥행성 놓고 평론가-누리꾼 뜨거운 논쟁

막말 난무… 미성숙한 토론문화 드러내

개봉 전, 모두들 말했다. “그거, 되겠어?”

8월 한국 개봉, “심형래는 충무로에서 냉대 받았고 평론가들은 ‘디 워’에만 혹평을 퍼부었다.” “이런 수준 이하의 영화는 비평할 가치조차 없다.”

9월 미국 개봉,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미국 가서 망신만 당했다.”

2007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영화 ‘디 워’ 논쟁을 단순화하면 이렇다.

1999년 ‘용가리’ 때문에 ‘신지식인’에서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몰렸던 심형래 감독은 개봉 전 잇달아 TV에 출연해 그동안의 고생담과 ‘할리우드 정복’에 대해 얘기했다. 그에 대한 동정론과 함께 ‘애국심 마케팅’이란 비난도 나오면서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옹호하는 쪽과 비판하는 쪽 사이에 막말과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개봉돼 상영 중인 영화를 소재로 TV 토론까지 열렸다.

○ ‘디 워’는 과연 성공했나

공식 발표된 제작비는 300억 원. 한국 영화사상 최고액이다. 한국에서 843만 관객이 들었다. 극장 측 수입을 빼면 약 250억 원의 수입으로 손해를 본 것 같지만 배급사 쇼박스는 “부가 판권 시장을 감안하면 적자가 아니며 한국에서 제작비를 건진 셈”이라고 밝혔다. 이는 마케팅 비용을 제외한 것이어서 더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 쇼박스는 마케팅 비용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1097만 달러(약 101억 원)를 벌었다. 현지 마케팅비도 발표되지 않았으나 이를 100억∼150억 원으로 추정할 때 극장 수입만으로는 적자다. 쇼박스는 “미국에서는 부가 판권 수입이 극장 수입의 두세 배”라며 “내년 1월 8일에 DVD가 발매되고 유료 TV나 케이블TV 판권을 더하면 미국에서도 손해는 아니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해외 특파원 보고서에 따르면 ‘디 워’는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큰 극장인 ‘AMC 엠파이어 25’ 등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개봉됐다. 개봉 첫 주 미국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최대 흥행작인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수입(238만 달러)을 넘었지만 상영관당 수입은 그 3분의 1에 못 미쳤다. 2275개관이라는 상영관 수가 첫 주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한국의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보스턴글로브는 “의상 편집 음악 연기 연출 등이 엉망이지만 컴퓨터그래픽(CG) 장면은 감탄스럽다”고, 할리우드 리포터는 “CG는 인상적이지만 웃음이 터지는 스토리 라인에 우스꽝스러운 대사들, 싸구려 유머가 재미를 반감시킨다”고 평했다. 리뷰 사이트인 ‘로튼토마토닷컴’에서는 25%의 호평을 얻었으나 리뷰는 28건밖에 되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이 사이트에서 92%(131건 중 121건)의 호평을 얻은 바 있다.

‘디 워’의 김민구 조감독은 “수입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에서 아시아 영화가 이 정도 규모로 개봉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더 잘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잘 만든 영화들은 그동안 왜 진출을 못했는가”라고 반문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 씨는 “한국에서 수백 개의 스크린을 잡는 것도 쉽지 않으니 분명 큰 의미가 있지만 많은 대가를 치르며 개봉해 과연 한국 영화의 이미지에 플러스가 됐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 ‘디 워’ 신드롬의 의미

‘디 워’ 현상을 ‘문화의 권력 이동’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한 영화의 팬 카페에 7만여 명이 가입하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영화를 홍보하면서 영화 흥행의 주도권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소통해 온 팬들의 발언이 폭발한 것으로 ‘디 워’는 이를 촉발하는 방아쇠가 됐을 뿐이다.

‘디 워’ 팬들은 이 과정에서 충무로가 심 감독을 ‘왕따’시켰다며 충무로를 ‘조폭 쓰레기 영화나 만드는 기득권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한국 영화계 전반에 대한 냉소로 번졌고 평론가들은 권위를 잃었다.

TV토론에서 ‘디워’를 비판했던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는 “평론가뿐 아니라 영화를 비판한 다른 팬들의 블로그도 초토화시키는 등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문제였다”고 말했다.

과연 ‘디 워’에 대한 여론은 그렇게 뜨거웠을까. 영화평론가 김영진(명지대 교수) 씨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일부 누리꾼이 쏟아내는 의견이 무한 증식되면서 없는 논란이 생겨나고 실체보다 커 보였다”고 말했다. 소수의 누리꾼이 여론을 좌우했다는 것이다.

김민구 조감독은 “개인 홈페이지에 자신의 생각을 말한 사람들에 대한 공격이 난무할 때 속이 상했고 그런 누리꾼들은 오히려 ‘디 워’에 대한 고도의 안티 세력이었다”며 “잘못된 인터넷 문화로 생긴 부분적인 문제들이 영화 자체의 문제로 부각되는 바람에 예기치 않은 피해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결국 ‘디 워’ 현상은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이름표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자신과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 토론 문화의 미성숙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로 남게 됐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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