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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9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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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TV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기 위해 5월 일반인 면접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일부 핵심 항목을 묻기 전에 응답자에게 보여 준 ‘쇼 카드’(사전 설명자료)가 KBS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무마하기 위해 ‘유도 설문’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쇼 카드는 기업이 마케팅 관련 여론조사 시 상품 설명을 하기 위해 쓰는 것으로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KBS는 여론조사기관인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 결과 응답자의 57.2%가 수신료 인상에 찬성했고 42.8%가 반대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이 10일 입수한 ‘디지털시대, 공영방송 KBS의 역할과 재원에 대한조사’ 자료에 따르면 KBS의 의뢰를 받은 동서리서치는 이 조사에서 12개의 문항을 묻기 전 응답자에게 2문항에 1개 꼴로 6개의 쇼 카드를 보여 줬다.
‘디지털로 전환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KBS의 공익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신료가 어느 정도로 인상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라는 10번 문항을 묻기 전에는 ‘현재의 수신료로는 디지털 전환과 공익적 역할 수행이 어렵다’는 취지의 쇼 카드를 제시했다.
“영국과 독일은 수신료의 인상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하고 미국 일본은 세금을 통해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KBS 수신료로는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1조 원가량의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우며 KBS의 공익적 역할도 수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라는 것.
또 ‘수신료를 공영방송사의 재원 상태나 재정 수요에 따라 결정하고 물가를 반영하여야 한다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혹은 반대하십니까’라는 11, 12번째 문항에 앞서서는 “한국의 수신료는 정당 간, 방송산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공영방송사의 재원 상태나 재정 수요, 물가를 반영하여 결정하기가 어렵다. 반면 영국 독일 일본은 공영방송사의 재원 상태나 재정 수요, 물가를 수신료에 반영하여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한국의 수신료 결정 과정에도 이러한 방식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다”는 쇼 카드를 보여 줬다.
이와 함께 ‘국가 기간방송이자 공영방송인 KBS의 공익적 역할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4번 문항 전에는 “최근 케이블TV 위성방송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다양한 상업적 유료 방송이 등장하고 있고 이런 경향은 가속화될 예정”이라는 쇼 카드를 제시했다. ‘유료 방송이 더 많이 등장할수록 KBS의 공익적 역할 강화를 위해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KBS의 지론을 우회적으로 담고 있다.
동서리서치 관계자는 “KBS 의뢰로 진행된 설문조사인 만큼 쇼 카드 제시 배경 등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면서도 “일부에서는 유도 설문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면에서는 현황에 대한 소개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해명했다.
한양대 이민웅(언론학) 교수는 “일반인이 잘 모를 만한 사항을 설명하겠다며 제시한 쇼 카드가 오히려 KBS에 유리한 답변을 유도하는 방향성이 실린 정보를 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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