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속에 갇힌 세계… 이미지의 ‘소꿉장난’

  • 입력 2006년 12월 7일 02시 59분


신세계 정신병원에는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산다. 그중 형광등과 자판기에 말을 거는 소녀 영군(임수정)은 자신이 ‘싸이보그’란다. 싸이보그는 밥을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식사를 거부하는 그는 자꾸 말라 간다. 자신이 남의 능력을 훔칠 수 있다고 믿는 일순(정지훈)은 영군을 좋아한다. 영군을 위해 동정심도 훔치고 요들송 부르는 능력도 훔친다. 그리고 밥을 먹게 만든다.

7일 개봉하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별한 사랑 이야기다. 진부함은 없다. 장면 하나, 에피소드 하나까지 독창적이다. 영군은 환상 속에서 총을 발사하고 고개가 180도 돌아가 입을 맞추는 ‘싸이보그 키스’를 한다. 온갖 은유가 가득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일부러 연극을 하는 것처럼 과장돼 있다.

영군은 영화 내내 ‘사용설명서도 없는’ 자신이 왜 만들어졌을까 궁금해한다. 환상 속에서 할머니는 ‘존재의 목적은…’까지만 들리는 말을 반복한다. 영군은 그 목적을 찾으려 하고 일순이 이를 돕다가 영화는 끝난다. 그런데 존재의 목적은 이미 달성돼 있다.

박 감독은 존재의 목적은 ‘존재 그 자체’라고 했다. 그저 밥을 먹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삶이라는 것. 영군은 밥을 거부해 자신도 모르게 존재의 목적을 상실하지만 일순이 밥을 먹여 문제는 해결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한 마디로 ‘영군이 밥 먹이기’. 같은 처지의 환자인 일순은 치료가 아니라 공감과 인정으로 영군의 존재 목적을 찾게 만들었다.

사랑하면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고 집착하는 우린 이해하기 힘든, 위선적이지 않은 사랑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박 감독의 설명처럼 ‘가상 세계 속에서 아이들이 나름대로의 논리와 일관성을 가진 소꿉장난 같은 영화’인데, 어디 애들 소꿉장난에 끼어들기가 쉬운가.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미술적으로 공을 들인 아기자기한 장면을 보며 즐기지 않는다면 ‘이게 뭐야’ 하는 소리가 나올 것도 같다. 12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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