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다모' 신드롬 일으킨 이재규 PD

  • 입력 2003년 8월 26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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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다모’를 연출한 이재규 PD가 드라마 제작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주일기자
드라마 ‘다모’를 연출한 이재규 PD가 드라마 제작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주일기자
《MBC 미니시리즈 ‘다모(茶母)’가 일종의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드라마에 중독된 시청자를 지칭하는 ‘다모 폐인(廢人)’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독특한 사극 톤의 대사는 ‘하오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문체 유행을 낳고 있다.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시청소감은 8회가 끝난 지난주 이미 50만건을 넘어섰다. 경쟁 드라마로 1년 이상 장기인기를 누리고 있는 SBS ‘야인시대’의 시청소감이 지금까지 1만4000여건이다.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다모’ 관련 주제어가 검색어 순위 1, 2위를 다투고 영화화까지 추진 중이다. 시청률은 20% 안팎에 불과하지만 문화소비계층의 주력이라 할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면서 그들의 좌충우돌 활약 덕분에 일종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다모’는 미니시리즈로는 최초로 HD카메라로 전작 촬영됐다. 전체 14부 중 12부가 사전 제작됐고 제작비도 편당 2억원이 넘는다. 한 신이 400컷에 이르는 고감도 영상, 화려한 와이어 액션, 고도로 압축된 대사 등이 이런 여건 속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최초’라는 말이 붙은 작품치고 작품성까지 담보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역량을 간과할 수 없다.

열풍의 진원지라 할 ‘다모’의 연출자 이재규(李在奎·33) PD는 이 작품이 첫 연출작인 신인이다. 96년 MBC에 입사해 ‘아줌마’, ‘국희’ 등의 조연출을 맡아 온 그는 지난 1년여간 ‘다모’ 제작에 매달리느라 입사 동기 중에서도 연출데뷔가 가장 늦었다.

“실패하면 끝이라는 각오로 목숨 걸고 찍었습니다. 힘들면 체력으로 버티고, 안 되면 몸으로 때우고….”

경기 양주의 MBC 스튜디오 촬영장에서 만난 그는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은 머리, 까맣게 탄 얼굴에 눈동자만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방금 갯벌에서 빠져나온 해병대 병사를 연상시켰다. 아직도 바늘자국이 선명한 이마의 상처는 수중촬영 도중 수영장 벽에 부딪히며 생긴 ‘영광의 상처’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다모’를 처음 접한 것은 지난해 7월경. 연출 데뷔를 앞두고 단막극을 염두에 두고 있던 그에게 ‘다모’의 기획안을 짜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사실 MBC가 방학기 원작의 만화 ‘다모’의 드라마판권을 산 것은 6년 전이었다. 그러나 기획단계에서 여러 차례 ‘엎어졌다’. 제작부담이 큰 사극인 데다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전 연령의 관심을 붙잡기 힘들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회피하던 ‘쓴잔’이 막내인 그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이제 걸음마를 막 시작했는데 달리기 대회에 나가는 것과 같았죠. 아내도 불꽃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짓이라며 결사반대했어요. 설사 성공한다 해도 실제 능력 이상의 과대평가가 될 것이라며….”

그러나 그는 독배가 될지도 모를 그 잔을 받았다. 영화감독을 꿈꾸다 생활의 안정 때문에 드라마 PD를 지원한 그로서는 ‘정말 새롭고 젊은 드라마를 찍어보자’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 오기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기 위해 그가 우선 주력한 것이 대본이었다.

드라마 ‘상도’의 대본에 참여했던 정형수 작가와 함께 ‘다모’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개인사를 구축했다. 드라마상에서는 대부분 생략될 내용이었지만 인물의 행동과 말 한마디에 생동감을 부여한 것이다.

대본이 완성된 다음에는 정 작가와 마주앉아 대사는 물론 지문까지 한 줄씩 소리 내어 읽어가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좌포청 종사관 황보윤(이서진 분)이 다모 채옥(하지원 분)에게 던진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대사도 이런 과정에서 태어났다.

그렇게 6개월여 대본작업이 끝나고 올해 2월부터 전국 9도의 오지를 빠짐없이 누빈 촬영은 ‘전쟁’이었다. 헬기로는 충분한 근접촬영이 되지 않는다며 촬영감독이 경비행기 날개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말 20마리가 질주하는 장면을 찍었다. 화살이 물속을 가르는 수중촬영을 위해 24시간 물속에서 버티기도 했다. 아역배우가 낙마해 4m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대역배우의 쇄골이 6조각 나는 등 부상도 속출했다.

“충북 단양의 한 미개발 동굴에서는 소리만 질러도 낙석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하지원씨와 저, 연출부 등 3명만 들어가서 폭죽 4발을 터뜨리는 장면을 찍었어요. 미친 짓이었죠.”

순둥이로 소문난 그가 그렇게 독종으로 변하면서 MBC에도 비상이 걸렸다. 촬영기간은 계속 늘어났고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솟았지만 그는 물러설 줄 몰랐다. MBC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차기작에 예정된 드라마들을 앞으로 돌리는 식으로 ‘다모 살리기’에 나서야 했다.

“처음엔 시청률이 낮아 초조했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을 보면서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진짜 폐인이 될 뻔한 젊은 놈을 다모폐인들이 살려주신 거죠.”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돌아간 ‘다모’ 촬영장은 어느새 ‘성지순례’에 나선 다모폐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다모란… ▼

‘다모’는 조선시대 관청에서 차를 나르던 관노를 말한다. 그러나 형조나 의금부, 포도청 등 치안을 담당한 관아에서는 이들을 여성 수사관으로도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MBC TV 월화 미니시리즈 ‘다모’(밤 10시)는 숙종 시대를 무대로 다모 채옥(하지원 분)과 서자 출신의 좌포청 종사관 황보관(이서진 분)이 역모 사건을 추적하면서 나누는 비극적 사랑을 그린 무협 멜로 드라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무협사극, HD카메라로 촬영된 첫 미니시리즈, 해피엔드가 아닌 비극적 결말 등 다양한 파격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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