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민웅/취재원 보호와 '몰카'

  • 입력 2003년 8월 12일 18시 21분


언론인은 검찰처럼 수사권이 없다. 청주지검이 SBS에 한 것처럼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을 시도할 수도 없고, 소환장을 발부받아 언론인을 법정에 세워 증언을 강제할 수도 없다. 오로지 취재원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 대화를 나누고 필요할 경우 관련 문서, 녹음·영상물 같은 증거물을 입수한다. 바로 이 자발적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불가피할 경우 언론인은 취재원의 신원과 보도되지 않은 나머지 정보 자료를 비밀에 부칠 것을 약속한다.

▼언론자유-公益사이 판단 미묘▼

정보가 언론의 피라면 정보를 공급하는 취재원은 혈관에 해당된다. 언론인은 자신의 생명의 원천인 피를 공급하는 혈관을 스스로 막는 일을 쉽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몰래카메라 문제’와 관련해 SBS를 일방적으로 두둔할 수는 없다. 그만큼 몰카 문제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라는 법익과 범죄자 처벌을 통한 공공질서의 확립이라는 두 법익이 충돌하는 사안으로 두 공익에 대한 면밀한 비교 계량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른바 방패법이 시행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2000년 현재 30개 주에서 시행) 언론의 취재원 보호권이 법률적으로 인정받는 조건은 특히 형사 사건의 경우 상당히 제한적이다. 요약하면 언론이 취재한 정보가 수사 중인 형사 사건과의 △관련성 △성공적 수사에 대한 긴요성 △따로 정보를 입수할 대안의 부재성이 모두 인정되면 언론의 수색 거부는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1993년에 발부된 3529건의 압수수색 영장 및 소환장 가운데 약 20%가 방패법의 보호를 받았다. 놀랍게도 영장 발부 건수와 언론의 승소 판결 비율은 방패법이 없는 주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도 미 연방정부는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 및 언론인에 대한 소환장 발부에 관한 지침을 만들어 각급 수사기관에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지침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소개하면 △같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대안적 수단을 찾는 합리적인 노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언론기관이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사전 교섭을 벌여야 한다 △교섭이 실패한 경우에도 언론이 아닌 출처로부터 범죄 행위에 관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야 하며, 단순히 수사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압수수색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언론의 정보가 성공적인 수사에 필수불가결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렇다면 청주지검은 SBS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기 전에 과연 충분한 수사를 통해 대안적 출처로부터 정보를 입수하려고 노력했느냐는 점이 문제가 된다. 보도에 따르면 양길승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이 법무장관에게 수사의뢰서를 제출한 것이 8월 2일이고, 청주지검이 SBS에 ‘몰카’ 테이프를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힌 것이 3일이며, SBS가 이를 거절한 것이 4일이고, 청주지검 수사관이 SBS에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려고 시도한 것이 5일이다. 이를 감안하면 청주지검의 영장 청구와 집행은 성급한 수사 편의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양 전 실장의 금전 수수 및 청탁 의혹에 관한 수사가 ‘몰카’ 수사만큼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볼 때 법원도 너무 쉽게 영장을 발부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압수수색 대안은 없었을까▼

한편 압수수색을 피하기 위한 언론의 취재 방식과 관련해서 미국의 한 언론법학자는 다음과 같은 제언을 했다. △취재 도중 습관적으로 익명을 약속하지 말라 △익명의 취재원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다른 취재원 또는 문서를 통해 보강할 증거를 입수하라 △익명으로 정보를 보도하기 전에 검찰이 같은 정보를 다른 경로를 통해 입수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라 △기자가 약속한 조건을 취재원이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하라 △익명의 취재원에게 해준 약속을 기록하라 △취재원에게 익명을 약속하기 전에 편집자와 의논하라. 한국 기자들도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민웅 한양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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