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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6일 1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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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6 전폭기가 하루 100여 차례 뜨고 내리는 이곳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시끄럽지만 활주로 주변 360만평 숲 속에는 종다리 너구리 토끼 고라니 칡부엉이 등 야생 동물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비행기에게 위협을 주기도 한다. 야생포유류가 활주하는 비행기와 부딪치거나 공중의 새가 비행기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
공군 BAT조(Bird Alert Team·조류퇴치 전담반)는 종일 활주로에서 폭음기를 쏘며 이들을 쫓아낸다.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은 즉석에서 ‘총살’시키나 때로는 전폭기들이 새떼를 피해 활주 방향을 바꿔 이착륙하기도 한다.
야생 동물들도 ‘군법’을 따르게 됐다. BAT조가 나타나면 달아날 줄 알게 됐고, 풀이 무성해지는 5월에 알을 낳는 종다리는 이 곳에서는 한 두 달 일찍 알을 낳는다. 5월 이곳에서는 대대적인 벌초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2월 이곳에서 전폭기 추락사고가 일어나 3개월여동안 비행이 금지됐을 때, 야생동물은 이곳을 ‘접수’했다. 참새는 폭음기 총신에 집을 지었고 고라니는 활주로를 뛰어 다녔다. 6월초 다시 비행기가 뜨고 내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후퇴’했다.
제작진의 카메라에 다리가 부러진 암컷 고라니가 찍혔을 때 박흥영 PD는 “코끝이 찡했다”고 한다. 곁에 있던 숫놈은 천성적으로 겁이 많으면서도 카메라를 정면으로 쏘아봤고 암컷을 부축해 끝내 함께 숲 속으로 달아났다.
박PD는 “엄격하지만 살 터전을 마련해 주는 군대에 익숙한 녀석에게 민간인 복장을 한 내가 더 큰 위협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