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라이터를 켜라'…기차무대로 한 코믹액션

  • 입력 2002년 7월 11일 19시 09분


‘라이터를 켜라’는 전적으로 시나리오 작가 박정우의 영화다. ‘주유소 습격 사건’(1999) ‘신라의 달밤’(2001) 등 그의 전작을 관통하는 무념(無念) 코믹 액션의 2002년 버전이다.

‘라이터를…’의 웃음은 엉뚱한 상황을 연속적으로 이어가는 솜씨에서 나온다. 상황은 이렇다. 나이 서른에도 부모에게 용돈을 타 쓰는 백수 허봉구(김승우)는 예비군 훈련을 마친 어느날 우동을 사먹고 남은 300원으로 라이터를 산다. 무작정 얻어 탄 차는 서울역의 한 기차로 향하고 봉구는 화장실에 ‘전재산’인 라이터를 놓고 내린다. 다시 화장실을 찾지만 라이터는 이미 건달 보스 양철곤(차승원)이 주웠고, 봉구는 돌려 달라고 애걸하지만 철곤 일당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철곤은 국회의원 박용갑(박영규)에게 지난 총선에서 도와준 대가로 돈을 받고 건달 생활을 청산할 참이었다. 그러나 박의원은 돈을 주지 않고, 이에 철곤은 승객을 인질로 잡고 기차를 장악한다. 모두 벌벌 떨고 있는데, 봉구는 홀연히 나타나 철곤에게 “웬만하면 내 라이터 돌려달라”며 철곤 일행과 한판 난타전을 벌인다.

영화 상세정보동영상
라이터를 켜라예고, 메이킹필름

이 영화는 최근 등장한 코믹 액션에 비해 소품에 가깝다. 기차라는 제한된 공간에, 라이터라는 유일한 갈등 요소 등 복잡할 게 없다. 김승우는 “최근 주연한 ‘예스터데이’보다 늦게 촬영에 들어가 훨씬 일찍 끝났을만큼 이야기가 단촐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군더더기없이 담박하게 웃기는데만 열중했다는 얘기. 이 영화가 같은 코믹 액션이면서 ‘뚫어야 산다’처럼 분명치 않은 코미디와 차별화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영화의 캐릭터는 최근 어떤 코미디 영화보다 또렷하다. TV 멜로드라마를 찍으면서 “이건 내 모습이 아닌데”라며 못마땅해하던 김승우는 특유의 캐릭터를 사실상 처음으로 살렸다. 특히 차승원은 ‘신라의 달밤’ 이후 각인된 ‘웃기는 오버맨’의 캐릭터가 이제 몸에 착 달라붙어 당분간 다른 배역은 맡기 힘들 듯하다. 그의 차기작은 ‘신라의 달밤’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 ‘광복절 특사’다.

‘공공의 적’ 조연 트리오 윤해진-이문식-성지루와 박영규(‘주유소…’) 이원종(‘신라의 달밤’)의 캐릭터는 다소 진부하나 그만큼 안정적으로 웃기는 매력도 있다. 장항준 감독의 데뷔작. 15세 이상 관람가. 19일 개봉.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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